경악전서(景岳全書)
≪景岳全書≫는 명나라 말기의 저명한 의가로서 동양고전인 經史子集에 깊이 통달함은 물론 천문, 지리, 병법,
역리, 술수, 음률 등에 대해 능히 심오함을 會通하여 해박한 학자인 景岳 張介賓(1563~1640)이 한의학 原論과
臨床各論을 총망라하여 체계적으로 분류 정리하여 저술한 종합한의학 서적이다. 이 ≪景岳全書≫는 과거
金元시대에 劉河間은 諸病은 皆屬於火라 하여 瀉火論을 주장하였고, 張子和는 劉河間의 학술사상을 계승하여
寒凉藥을 偏用하였으며 發汗・涌吐・攻下에도 두루 능하였으나 특히 攻下에 치우쳤으니 愈攻愈虛라는
醫學正論에 맹목이었으며, 朱丹溪는 一水不勝二火之說 즉 腎中一水가 君相二火를 이길 수 없으며,
陽常有餘 陰常不足이라 하면서 苦寒한 약물으로써 補陰論을 주장했는가 하면, 後世方派 중에서 易老 張潔古의
溫補脾胃하는 학풍을 承襲하여 補中益氣湯과 半夏白朮天麻湯 등 불후의 명방들을 창방한 李東垣 조차도 당시
劉,張, 朱 등 三醫들의 抑陽助陰하는 醫學的 思潮에 風靡되어 그가 저술한 ≪脾胃論≫ 말미 飮食勞倦所傷始爲熱中論에서
“相火는 下焦包絡之火로서 元氣之賊”이라 하였는데, 이와 같은 金元四大家들의 抑陽助陰하는 왜곡된 醫說을 배척하고,
命門을 扶陽하는 醫說을 확립하는데 중점을 둔 서적이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처방편을 별도로 설정하여 여기에
수재된 2,626처방들을 제갈량의 八陣圖를 본받아 補, 和, 攻, 散, 寒, 熱, 固, 因 등 八陣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함으로써
5천년 醫學史上 전무후무하게 가장 우수한 醫學書籍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인들은 한의서라면 御醫 許浚이 편집한 ≪東醫寶鑑≫ 밖에 모른다. 그러나 의학전문가의 혜안으로 살펴보면,
≪동의보감≫은 출판 당시까지 전해온 醫書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내용면에서 보면 본래 의학의 원류는 상고시대의 ≪黃帝內經≫에서 비롯하여
후한시대의 長沙太守 張仲景에 의하여 醫論이 체계화되었으나 金元四大家에 이르러 醫說의 왜곡됨이 많았는데
후학들이 이를 瞽馬聞鈴으로 맹신함으로써 억울하게 요절하는 창생들이 많았다. 그런데 ≪동의보감≫에서도
이를 비판하거나 가감없이 그대로 수재함으로써 의학적 오류가 파다하다.
≪景岳全書≫의 저자 장경악은 金元四大家들의 左說을 배척하고 인간 생명의 원천인 眞陰과 眞陽의 평형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증진하여 驻颜長春하고 延年益壽를 도모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고 단 하나의 처방이라도 창방한다는 것은 진실로 神같은 깨달음 가운데 인간의 生理와 病理는 물론
醫理와 藥理를 透得하여 賢達한 학자가 아니면 결단코 불가능한 법인데, 이 ≪景岳全書≫에는 만고불후의 名方을
무려 189방이나 創方하여 활용하고 후세에 전하였으니 杏林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醫聖이요, 그의 저서인
≪경악전서≫는 永遠不朽의 寶筏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張景岳의 醫論이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岐下 周命新의 ≪醫門寶鑑≫, 惠庵 黃度淵의 ≪方藥合編≫,
東武 李濟馬의≪東醫壽世保元≫, 石谷 李圭晙의 ≪醫鑑重磨≫, 晴崗 金永勳의 ≪晴崗醫鑑≫ 등을 風靡하게
되었으며, 특히 趙憲泳의 ≪通俗漢醫學原論≫은 아예 ≪景岳全書≫의 소개서이며 해설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근세 우리나라 醫學은 ≪景岳全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학자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景岳全書≫는 1700년에 초판을 간행한 魯超의 말처럼 渡世之津梁이요 濟世之慈航으로서 동양의학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필휴의 寶典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