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경악전서(校註景岳全書) 세트
  • 정가
    180,000원
    10% 할인 162,000원
  • 출간
    2020년 6월 25일 출간
  • 출판
    장계출판사
  • 지은이
    권삼수 편수
  • ISBN
    9791196820329(1196820325)
  • 쪽수
    2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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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校註景岳全書≫ + ≪漢文漢字便覽≫ 세트 :218,000원 10% 할인

196,200원

교주경악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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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도서출판사상 최초 현상금을 건 무결점 우량도서! 校註景岳全書
≪경악전서≫는 張景岳 선생이 창방하여 수재된 처방이나 독창적인 醫論은 우수하였으나 저자인 張景岳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60년 만에 그의 외손자 林日蔚의 주선으로 廣東布政使 魯超에 의해 간행되면서 오류가 파다하였다. 거기에 더하여 1700년 초판 후 50여 판본이 거듭되면서 全書 64권의 방대한 거질을 완전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전 판본들의 오류를 교정하면서 새로운 오류를 양산함으로써 각 판본들에는 수 천자의 오류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학자들은 수수방관하지 않고 여러 차례 교정을 하였으니 1778년 四庫全書, 1914년 王本, 1917년 江本, 1991년 宋本에서 교정의 노력을 경주한 면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세간에서 비교적 정밀 판본으로 인정받고 있는 宋本에서도 成都中醫學院 15명의 교수 학자들이 4년간 교정 작업을 했음에도 약 2천 字의 오류가 발견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한 어휘에 이르러 본뜻을 알 수 없다고 주석한 부분도 있었고, 원래 ≪景岳全書≫의 내용이 학리적으로 정당한데도 醫論에 背馳되게 교정한 부분도 있었다.

이에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장인 長溪 權三壽 선생이 크게 분발하여 二十星霜 각고의 노력으로 기존의 출간된 ≪景岳全書≫의 오자(誤字)와 탈간(脫簡)된 문자들을 校訂하고 補正하기 위하여 중국과 대만 그리고 전국의 대학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시어 十餘版本을 정밀하게 校勘하고, 200여 引用 醫籍을 일일이 校證하면서 전 석학들조차 감히 해석하지 못한 난삽한 어휘들을 상세하게 해석하였음은 물론 심지어 국내외 각종 한의약 사전이나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사이트에서 조차 확인이 불가능한 내용을 중국의 最古最能 검색사이트인 百度一下(https://m.baidu.com)에서 확인하여 梓行한 판본이 바로 이 ≪校註景岳全書≫이다.

이 ≪校註景岳全書≫를 한번 교정하는 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는데 이 힘든 校訂 작업을 8회를 반복하여 완성한 판본이다. 저자가 全書 64권에 사용된 글자 수가 100만자나 되는 방대한 ≪校註景岳全書≫를 출판하면서 우리나라 도서출판 사상 처음으로 오자 一字에 대해 1만원의 현상금을 걸었으나 만 2년이 훌쩍지난 현재까지 단 한 자의 오류를 제시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는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 명백한 證左이다. 따라서 이 ≪校註景岳全書≫는 천하에 제일 정밀하고 확실하여 名實相符한 濟衆之寶筏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국 도서출판사상 최초 현상금을 건 무결점 우량도서!
校註景岳全書
景岳全書의 主要版本
우선 本書에서 指稱하는 版本들의 理解를 증진시키기 위해 景岳全書 出版의 歷史를 槪觀하여 9개의 주요 판본들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다.
  • 1. 初版은 康熙 39年(庚辰・1700) 謙菴 魯超 魯本
  • 2. 再版은 康熙 50年(辛卯・1711) 靑南 賈棠 賈本
  • 3. 三版은 康熙 52年(癸巳・1713) 査禮南(査嗣瑮序) 査本
  • 4. 淸나라 乾隆 33年(戊子・1768) 藜照樓 魯本飜刻 藜本
  • 5. 淸나라 乾隆 43年(戊戌・1778) 木版本 四庫全書
  • 6. 上海育文書局 王榮春 民國 3年(1914) 賈本筆寫 石印本 王本
  • 7. 上海廣益書局 民國 6年(1917) 江忍庵 校訂版 石印本 江本
  • 8. 國風出版社 再版은 中華民國 69年(1981) 賈本轉寫活版 國風版
  • 9. 人民衛生出版社版(1991)은 宋鷺冰교수 주관 校註 宋本
위에서 열거한대로 魯本은 康熙 39年(庚辰・1700)에 廣東布政使 魯超가 간행한 初版本이고, 賈本은 康熙 50年(辛卯・1711)에 兩廣轉運使 賈棠이 출판한 再版本이며, 査本은 康熙 52年(癸巳・1713)에 廣東典試正主考 査嗣瑮이 序하고 査禮南이 출판한 三版本인데, 이 3개의 版本이 거의 연이어 출판하였다. 따라서 이후에 수없이 출판된 景岳全書가 이들 3개 系統 版本이 主宗을 이룬다. 그리고 四庫全書는 乾隆 43年(戊戌・1778)에 乾隆帝의 總纂官 紀昀 등에 의해 간행한 교정본이다. 이어서 王本은 民國 3年(1914)에 王榮春이 賈本을 筆寫하여 간행한 것이고, 江本은 民國 6年(1917)에 江忍庵이 역시 賈本을 底本으로 하여 간행한 校訂本이며, 國風版은 中華民國 69年(1981)에 臺灣에서 賈本을 底本으로 하여 간행한 것이고, 宋本이란 1991년에 成都中醫學院에서 宋鷺冰 교수의 主管으로 15명의 교수와 학자들이 賈本을 底本으로 하고 魯本・査本・江本으로 主校本으로 하여 4년 동안 校註한 版本이다.
위 魯本・賈本・査本・藜本・四庫全書・王本・江本・國風版・宋本 중에서 魯本과 査本은 접할 기회가 없었고, 賈本은 啓明大學校 동산도서관에 珍藏되어 있으며, 藜本은 安東大學校에 소장되어 있고, 王本은 慶熙大學校 중앙도서관에 所藏되어 있으며, 江本은 東國大學校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고, 餘他 四庫全書・王本・國風版・宋本 등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版本이다.
方藥合編에 收載된 景岳處方
上10 補陰益氣煎(新補16)
上11 六味回陽飮(新熱2)
上11 理陰煎(新熱3)
上16 三氣飮(新熱17)
上46 右歸飮(新補3)
上46 大補元煎(新補3)
上47 大營煎(新補14)
上48 兩儀膏(新補18)
上49 貞元飮(新補19)
上51 金水六君煎(新和1)
上59 休瘧飮(新補29)
上60 何人飮(新因25)
上63 秘元煎(新固1)
上65 擧元煎(新補17)
上67 鎭陰煎(新熱13)
上74 五德丸(新熱18)
上76 胃關煎(新熱9)
上78 濟川煎(新補21)
上90 煖肝煎(新熱15)
上99 壽脾煎(新熱16)
上102 毓麟珠(新因14)
上統 21方
中24 正柴胡飮(新散6)
中31 麻桂飮(新散7)
中47 神香散(新和20)
中49 六安煎(新和2)
中78 牛膝煎(古因24)
中79 追瘧飮(新因又25)
中98 和胃二陳煎(新和3)
中102 溫臟丸 (新熱24)
中172 柴歸飮(新因15)
中統 9方
下25 大和中飮(新和7)
下81 大分淸飮(新寒9)
下81 小分淸飮(新和10)
下統 3方
合計 33方
  • ◈≪方藥合編≫ 上・中・下 통의 467방 중에서 張景岳의 처방이 33방이니 7%이상을 차지하였다.

  • ◈黃度淵은 상기의 거의 모든 處方들을 ≪醫宗損益≫으로 表記하였다.
  • ◈申載鏞은 대부분의 出典을 ≪景岳全書≫로 考證하였으나, 正柴胡飮 牛膝煎 柴歸飮 大和中飮 등은 ≪方藥合編≫을 따라 ≪醫宗損益≫ 그대로 表記하였다.
  • ◈中98 和胃二陳煎을 黃度淵은 ≪寶鑑≫으로 記錄하였고, 申載鏞은 本方을 ≪類證治裁≫ 卷三의 處方으로 記錄하였으나, ≪類證治裁≫(1839)는 淸나라 林珮琴이 撰하였으므로 ≪類證治裁≫에서 도리어 ≪景岳全書≫로부터 此方 和胃二陳煎을 引用하였을 뿐이다. 다만 成輔社의 ≪東洋醫學大辭典≫에는 ≪景岳全書≫로 되어 있다.
  • ◈中102 溫臟丸은 黃度淵, 申載鏞 모두 處方의 出典을 ≪寶鑑≫이라고 하였으나 ≪寶鑑≫에는 溫臟丸이 없으며, 本方은 張景岳의 創案方이다.
도서명 페이지수 도서사이즈
교주 경악전서(부록) 230 224 * 318 * 17
교주 경악전서(下) 969 224 * 318 * 54
교주 경악전서(上) 1036 224 * 318 * 58
목차
  • 교주 경악전서(上)
  • 교주 경악전서(下)
  • 교주 경악전서(附錄)
校註景岳全書 주요 교정부분
搏堅軟散 十三 ☞本書 226쪽. 景岳全書 本文에서 脫簡된 26字. 諸本에서 보충하지 않았다.
≪脈要精微論≫曰 心脈搏堅 1)而長 當病舌卷 2)不能言 其軟而散者 當消環自已。 肺脈搏堅而長 3) 當病唾血 其軟而散者 當病灌汗 4) 至令不復散發也。 肝脈搏堅而長 色不靑 當病墜若搏 因血在脇下 令人喘逆 其軟而散 色澤者 當病溢飮 5)。 溢飮者 渴暴多飮 而易入肌皮腸胃之外也。 胃脈搏堅而長 其色赤 當病折髀 6) 其軟而散者 當病食痺 7)。 脾脈搏堅而長 其色黃 當病少氣 其軟而散 色不澤者 當病足胻腫 8) 若水狀也。 腎脈搏堅而長 其色黃而赤者 當病折腰 其軟而散者 當病少血 至令不復也。 帝曰 診得心脈而急 此爲何病? 岐伯曰 病名心疝 心爲牡臟 小腸爲之使 故少腹當有形也。 帝曰 診得胃脈何如? 曰 胃脈實則脹 虛則泄。
◇至 : 매우. 지나치게. 대단히. 가장. 뜻밖에. 의외로. 심지어. 마침내. 드디어
≪脈要精微論≫에 말하기를, “心脈의 박동이 견실하면서 길면 장차 혀가 말려들어 말을 못하는 病이 발생하게 되고, 脈이 연약하여 흩어지면 반드시 消渴病이 발생하지만 순환이 되면 자연히 낫게 되는 것이다. 肺脈의 박동이 견실하고 길면 반드시 唾血症狀의 病이 발생하고, 肺脈이 연약하고 흩어지면 땀이 줄줄 흘리는데 다시 지나치게 발산시켜서는 안 된다. 肝脈의 박동이 견실하고 길면 顔色이 푸르지 않으면 반드시 높은 곳에서 墜落하거나 打撲하여 脇下에 瘀血이 정체되었기 때문에 喘逆이 발생한다. 肝脈이 연약하고 흩어지면 顔色이 潤澤하면 반드시 溢飮이 발생한 것이다. 溢飮이란 渴證이 날 때 갑자기 많은 물을 마셔서 쉽게 肌肉과 皮膚사이나 腸胃의 둘레나 수족에 물이 괴어서 몸이 붓고 숨이 차며 기침을 하게 된다. 胃脈의 박동이 견실하고 길면 顔色이 붉으며 반드시 넓적다리가 부러진 것 같이 매우 아프며, 胃脈이 연약하고 흩어지면 胃中에 陽氣가 순환되지 않아 음식을 먹은 후에 아프고 반드시 정강이가 붓는 病이 발생하여 마치 水腫의 吐하는 食痺가 발생하게 된다.” “脾脈의 박동이 견실하고 길면 顔色이 黃色을 나타내고 반드시 氣가 부족한 병이 발생하며, 脾脈이 연약하고 흩어지면 顔色이 윤택하지 않고형상과 같게 된다. 腎脈의 박동이 견실하고 길면 顔色이 黃赤色을 나타내고 반드시 허리를 잡친 듯이 아프며, 腎脈이 연약하고 흩어지면 반드시 精血이 부족한 병을 앓게 되는데 恢復할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1) 搏堅 : 脈이 와서 손가락에 응함이 搏擊하면서 굳세고 곧음(堅挺)이다. ◇心脈搏堅而長은 心經에 邪氣亢盛한 脈.
  • 2) 舌卷 : 혀가 말려들어 펴지지 않는 병.
  • 3) 搏堅而長 아래 “當病唾血 其軟而散者 當病灌汗 至令不復散發也 肝脈搏堅而長” 이 26字는 原作에서부터 脫簡되었으나, ≪黃帝內經・素問・脈要精微論≫에 依據하여 補正하였다.
  • 4) 灌汗 : 땀이 물을 대듯이 줄줄 흘러나오는 것.
  • 5) 溢飮 : 痰飮의 하나. 水飮이 피하 조직에 몰려 생긴 병증으로, 몸이 붓고 무거우며 숨이 차고 기침을 한다.
  • 6) 折髀 : 넓적다리가 부러지는 것. 넓적다리가 아프기를 부러진 것과 같다는 뜻.
  • 7) 食痺 : 胃中에 陽氣가 순환되지 않아서 발생하는데 음식을 먹은 후에 아프고 吐하면 멎는 증세로 食痺而吐라 한다.
  • 8) 胻腫 : 정강이가 붓는 병.
宋本의 오류를 다시 교정한 부분 ☞ 각주7
  • 8. 六一順氣湯(陶氏)1) ☞本書 1668쪽.
    以代大小承氣 大柴胡 大陷胸等湯之神藥也。 此湯治傷寒熱邪傳裏 大便結實 口燥咽乾 怕熱譫語 揭衣狂走 斑黃陽厥 潮熱自汗 胸脇滿硬 臍腹疼痛等證 效不盡述。
  • 大黃二錢 枳實 黃芩 厚朴 柴胡 甘草 芍藥 芒硝各一錢2)
    水煎服。 欲峻者 大黃後入。 凡傷寒過經 及老弱或血氣兩虛之人 或婦人産後 有下證 或有下後不解 或表證尙未除而裏證又急 不得不下者 用此湯去芒硝下之吉。 蓋恐硝性峻急3) 故有此戒。 經云 轉藥孰緊? 有芒硝者緊也4)。 今之庸醫 不分當急下 可少與 宜微和胃氣之論 一槪用大黃・芒硝亂投湯劑下之 因玆枉死者多矣5)。 仲景云 蕩滌傷寒熱積皆用湯液 切禁丸藥 不可不知也。

  • 21. 黃龍湯(陶氏) ☞本書 1670쪽
    治熱邪傳裏 胃有燥糞結實 心下硬痛而下利純淸水6) 身熱譫語發渴。 此非內寒而利 乃因湯藥 而利也 名曰積熱利證 宜急下之。 身無熱者7) 宜用此湯 身有熱者 宜六一順氣湯。 醫家有不識此證者 便呼爲漏底傷寒8) 卽用熱藥止之者 是猶抱薪救火也9) 誤人多矣。
    大黃二錢 芒硝一錢半老弱者去此 枳實 厚朴 甘草各一錢 人蔘 當歸各五分10)
    水一鍾半 生薑三片 棗二枚 煎服。 後再加桔梗 煎一沸 熱服爲度

  • 22. 黃龍湯(良方) 方在婦人八五。
    治姙婦感冒風寒 熱入胞宮 寒熱如瘧。
  • 23. 黃龍湯(錢氏) 方在小兒二五。
    治小兒感冒發熱 或寒熱往來。
  • 1) 陶氏 : ≪傷寒六書・1445≫와 ≪傷寒全生集≫을 撰한 明朝의 陶節菴(1368~?), ≪傷寒六書≫方名 六乙順氣湯.
  • 2) 一錢 : 原作과 ≪傷寒六書≫에도 重量表示가 없으나 ≪東醫寶鑑≫에 依據하여 重量을 補正하였다.
  • 3) 硝性峻急 : 芒硝의 藥性이 준엄하고 빠르다는 말.
  • 4) 經云...緊也 : 본 구절은 ≪內經≫의 내용이 아니고, ≪傷寒六書・殺車槌≫에서 引用한 내용임.
  • 5) 枉死 : 억울하고 원통하게 죽은 사람. 또는 억울한 죄로 죽음. ◯參寃死
  • 6) 純淸水 : 原作에는 ‘綂淸水’였으나 ≪傷寒六書≫卷三 本方에 依據하여 校訂함. ◯參綂은 統의 古字.
  • 7) 身無熱者 : 본방은 陶節菴의 ≪傷寒六書≫와 徐春甫의 ≪古今醫統≫에는 “身有熱者 宜用此湯 身無熱者 宜用六一順氣湯”으로 되어있으나, 方劑構成이 承氣湯이 主劑이지만 人蔘 當歸가 配劑되어 峻烈性이 六一順氣湯에 비해 稍緩하므로 老弱者나 微虛한 체질에 적응하는 處方이기 때문에 方劑에 至精至密한 景岳이 “身無熱者 宜用此湯 身有熱者 宜六一順氣湯”으로 校訂한 것이며, 本書 八卷 傷寒治例 攻補兼用諸方의 本方治證에서도 “傷寒熱邪傳裏 當下而氣血兼虛者”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宋本에서는 두 處方內容은 살피지 않고 ≪傷寒六書≫의 治證만 따라서 원래대로 校訂하였으니 惑亂이 惹起되는 일이라고 본다. ☞本書 本草正 大黃條參照.
  • 8) 漏底傷寒 : 傷寒證에서 下利가 계속되고 멈추지 않는 증세. 身熱面赤 下利淸穀 身體疼痛하는 陰利寒證을 이르는 말.
  • 9) 抱薪救火 : 섶나무를 안고 불을 끄려는 것이니, 일을 섣불리 하여 도리어 화를 자초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
  • 10) 各五分 : 原方과 ≪傷寒六書≫에도 各藥材의 重數는 脫文이었으나 ≪醫學入門≫에 依據하여 補正하였다
證治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
論治 共三條
☞ 本書 769쪽
一. 外感證 邪在少陽 身發寒熱而脇痛不止者 宜小柴胡湯 三柴胡飮 或河間葛根湯之類酌宜用之。
  • 〇若外邪未解而兼氣逆脇痛者 宜柴胡疏肝散主之。
  • 〇若元氣本虛 陰寒外閉 邪不能解 而脇痛畏寒者 非大溫中飮不可。
  • 一. 內傷肝膽 氣逆不順而脇痛者 宜排氣飮 推氣散 沉香降氣散 木香調氣散之類主之。
  • 〇若鬱結傷肝 中脘不快 痛連兩脇 或多痰者 宜香橘湯。
  • 〇若暴怒傷肝 氣逆脹滿 胸脇疼痛者 宜解肝煎。
  • 〇若怒氣傷肝 因而動火 脇痛 脹滿煩熱 或動血者 宜化肝煎。
  • 〇若氣滯胸脇痛 而兼喘者 宜分氣紫蘇飮。
  • 〇若男子憂鬱傷肝 兩脇疼痛者 宜枳實散。
  • 〇若男婦肝腎氣滯 自下而上 痛連兩脇者 宜木通散
  • 〇若悲哀煩惱 肝氣受傷 脈緊脇痛者 宜枳殼煑散。
  • 〇若因驚氣逆 脇痛不已者 宜桂枝散。
  • 〇若食積作痛 但痛有一條杠起1)者是也 宜大和中飮 或用保和丸。
  • 〇若痰飮停伏 胸脇疼痛者 宜導痰湯 加白芥子。
  • 〇若肝火內鬱 二便不利 兩脇痛甚者 宜當歸龍薈丸 或左金丸。
  • 〇若從高跌墜 血流脇下作痛者 宜復元活血湯。
  • 〇若婦人血滯 脇腹連痛者 宜芍藥散 決津煎。
  • 〇若肝脾血虛 或鬱怒傷肝 寒熱脇痛者 宜逍遙散
  • 〇若肝腎虧損 脇肋作痛 頭眩心跳身痛 或婦人經水不調 經後作痛者 宜補肝散。
  • 一. 內傷虛損 脇肋疼痛者 凡房勞過度 腎虛羸弱之人 多有胸脇間隱隱作痛 此肝腎精虛 不能化氣 氣虛不能生血而然。 凡人之氣血 猶源泉也2) 盛則流暢3) 少則壅滯 故氣血不虛則不滯 虛則無有不滯者。 倘於此證 不知培氣血 而但知行滯通經 則愈行愈虛 鮮不殆矣4)。 惟宜左歸飮 小營煎 及大補元煎之類主之。 或有微滯者 用補肝散亦可。
  • 〇若憂思過度 耗傷心脾氣血 病有如前者 宜逍遙飮 三陰煎 七福飮之類主之 或歸脾湯亦可。
  • 〇若以勞倦 過傷肝脾氣血 而病如前者 宜大營煎 大補元煎之類主之。
    • 1) 杠起 : 막대기처럼 일어서다.
    • 2) 源泉 : ①물이 흘러나오는 근원. 즉 發源地 ②사물의 근원
    • 3) 流暢 : 막힘없이 잘 통함. 말이나 글이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매끄러움.
    • 4) 鮮不 : ~하지 않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말로서 ‘無不’보다는 좀 여유로운 부정문이다
    앞쪽의 내용을 기존 판본인 宋本에서 발췌한 내용
    蟹渤에 대한 진실
    ≪景岳全書≫ 卷之三 傳忠錄下 丹溪辨二十九
    ≪丹溪心法≫ 痢疾門附錄曰
    諸有積者 以肚熱纏痛推之 諸有氣者 以狀如蟹渤驗之。 究其受病之源 決之對病之劑 大要以散風邪 行滯氣 開胃脘爲先 不可遽用肉荳蔲 訶子 白朮輩 以補住寒邪 不可投米殼 龍骨輩 以閉澁腸胃 邪得補而愈盛 故變證作 所以日夕淹延而不已也。

    이글은 ≪校註景岳全書≫ 182쪽에 수록된 글로서 ≪丹溪心法≫의 痢疾門 附錄에 있는 것을 張景岳이 본서에 全文을 가감없이 그대로 轉載하고 평론을 한 것이다. 우선 朱丹溪는 楊仁齋의 ≪仁齋直指方論≫에서 轉載하면서, 冒頭에 “楊仁齋曰”이라고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마치 丹溪 자신이 저술한 것 같은 오해를 일으키게 하였고, 또 ‘狀如蟹渤’을 ‘肚如蟹渤’이라고 轉寫誤謬를 함으로써 후학들로 하여금 謎題 같은 문장에 직면하게 하였다. 심지어 금세기 東洋醫學 최고의 대학인 중국 四川省의 成都中醫學院 교수 15명이 집필한 宋本에서도 蟹渤에 각주를 하면서 未詳이라고 적은 다음 여러 가지 견강부회한 臆說들을 부기하도록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다음으로 張景岳은 이 글이 ≪直指方≫의 원문을 전재한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朱丹溪의 所著로 오인하였음은 물론 ‘肚如蟹渤’이 轉寫誤謬라는 것도 파악하지 못하였다. 단지 末尾의 ‘補住寒邪’에 대한 신랄한 批評만 하였을 뿐이다. 결론적으로 丹溪는 楊仁齋가 저술한 ≪直指方≫의 내용을 轉寫하면서 ‘狀如’를 ‘肚如’라고誤記하였고, 景岳은 이 부분이 ≪仁齋直指方論≫의 내용인 것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으며, 朱丹溪의 所撰으로 인식하고 그대로 轉載하면서 단지 補住寒邪에 대하여 부당함을 論及하였을 뿐이다.

    蟹渤이란 蟹沫로서 게거품을 지칭하는데, ‘狀如蟹渤’이란 항문 밖으로 나오는 대변의 상태가 마치 게거품과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풀어서 평이하게 기록하자면 ‘大便狀態 似如蟹渤’이라고 기록해야 穩當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글을 줄여서 쓰는 경향이 頗多하다보니 이런 착오가 발생한 것이다.
    아래의 影印은 楊士瀛의 ≪仁齋直指方論(1264)≫의 해당부분
    景岳全書 중에서 어려웠던 부분 ☞1099쪽
    婦人吹奶法如何
    皂角燒灰蛤粉和
    熱酒一杯調八字
    管教時刻笑呵呵
    부인의 젖이 불어 아플 때 치료법은 어떻게 하나요?
    조각 태운 재를 蛤粉 가루와 골고루 잘 섞어서
    따뜻한 술 한 잔으로 두 돈의 가루약을 타서 마시면
    틀림없이 약을 먹자말자 곧바로 낫게 될 것이라네!
    ☞이글은 원래 ≪本草綱目≫ 皂莢條 아래에 있는 내용인데 張景岳이 轉載한 것이다. 또 ≪婦人大全良方≫에도 收載되어 있으나 '管敎時刻' 대신 '須臾揉散'으로 되어 있다.
    ☞難易度를 살펴보면 起句 承句는 평범한 글이지만, 轉句는 약간 어렵고 마지막 結句는 虛詞 공부를 하지 않으면 평생을 들여다보아도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다 ^^

    어려운 한문 문장에서 글자 본래의 보편적인 뜻만으로 해석이 어려울 때는 반드시 문장 중에 虛詞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마치 복잡한 구조의 고장 난 기계에서 작동되지 않는 부품을 찾아내어 이에 꼭 맞는 제품을 교체하면 기계가 신통하게도 잘 작동하게 되듯이, 문장 중에서 허사를 제대로 찾아내면 예상외로 문장을 잘 이해하기 쉽게 해석할 수 있게 된다.
    字句解釋
    ◈和
    약을 조합한다는 和劑의 준말로서 調劑나 調藥과 同義語.
    ◈調
    粉劑藥을 液狀의 약이나 술에 타서 복용하는 調服의 준말로 沖服 點服이라고도 한다.
    ◈八字
    한약 처방에서 무게의 중량을 나타내는 ‘錢’이란 원래 동전 하나로써 가루약을 떠서 담은 무게를 一錢으로 정했기 때문에 한약 처방에서는 약 중량을 一錢 二錢 五錢 등으로 표기한다. 따라서 동전 하나에는 글자가 4字가 있으니 一字는 2분 5리 이고, 八字는 二錢에 해당된다.
    ◈管
    ①虛詞로서 반드시. 꼭. 틀림없이. 비록 ~할지라도. 어쨌든. 물론.
    ②名詞로서는 대롱. 피리. 열쇠.
    ③動詞로서는 포용하다. 보살피다. 가르치다. 관할하다. 주관하다. 관악기를 연주하다

    ੦管交 : 꼭. 반드시. 틀림없이.
    ੦管敎 : 반드시. 꼭. 틀림없이. 절대로. 꼭 ~하게 하다.
    ◈時
    항상. 늘. 때로. 때마다. 우연히. 즉시. 제때에. 때맞게. 적시에. 간간이. 간혹. 특별히
    ੦‘是’와 통용하여 대명사로서, 이것. 이들. 여기. 이렇게.
    ੦時刻 : 때. 때마다. 언제나. 항상. 늘. 즉시. 바로. 명사로서 시간의 흐름상의 어느 한 순간.
    ◈笑呵呵
    直譯을 하면 “껄껄 큰소리로 웃다”이지만, 異譯을 하면 “병이 다 나았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異譯을 함으로써 전체 문장의 뜻이 순조롭게 될 수 있다.
    校註景岳全書 序文
    아득한 옛날 炎帝 神農氏는 本草의 性味와 醫治的 效能을 규명하여 ≪神農本草經≫을 저술하였고, 뒤이어 黃帝 軒轅氏는 岐伯 등 六臣들과 더불어 醫學을 講論하여 ≪黃帝內經≫을 저술하였으니 비로소 炎黃兩帝가 인간의 生生之道인 醫藥의 濫觴이 되는 것이다. 특히 ≪黃帝內經≫은 醫藥의 모든 理論을 包括하여 至精至微하면서도 整然하여, 인류 역사상 반만년 이래로 醫藥原論의 準繩으로 尊崇되고 있는 寶筏이다. 그리고 後漢時代의 長沙太守 張仲景은 ≪傷寒論≫과 ≪金匱要略≫을 저술하면서 漢醫藥史上 처음으로 二種 이상의 藥材를 配合하여 處方을 구성함으로써 千病萬證의 治療에 크게 기여하였으니, 이는 곧 炎黃兩帝의 醫論을 融合하여 人類醫療를 한 단계 發展시키는 巨步를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黃帝內經≫이후로 최고의 學問을 定立하게 되었고, 그 뒤 隋・唐이후 醫論을 敦篤하게 발전시키는데 공헌한 학자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金・元시대에 이르러 劉河間이 諸病皆屬於火之論을 주장하더니, 補中益氣湯을 創方하고 脾胃論을 定立하여 溫補派의 主宗으로 인정받는 李東垣조차도 相火는 下焦包絡之火로서 元氣之賊이라고 주장하면서 火與元氣不兩立說을 提唱하였는가하면, 급기야 朱丹溪가 一水不勝二火之說 즉 腎中一水가 君相二火를 이길 수 없으며, 陽常有餘 陰常不足之說을 提起하면서 知栢等屬으로써 補陰한다고 역설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藜藿野人들은 抑陽助陰으로 眞陽을 戕伐당하여 夭殤함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胡猜亂道가 沿襲成風되어 謬妄한 醫說을 群犬吠聲으로 黙黙承襲하니, 擧世矇矇하여 神農遺業에 魯莽滅裂의 弊端이 甚大하게 되었다.

    이에 憤然이 일어나 金・元時代의 醫學的 弊端을 과감하게 匡正한 학자가 있으니 바로 景岳 張介賓이다. 神醫 景岳은 難得而易失者는 오직 陽氣이고 旣失而難復者는 역시 陽氣뿐이라고 주장하면서 命門火를 鞏固하게 하는데 注力하였으니, 즉 人體에서 陽은 生氣이고 陰은 死氣이기 때문에, 眞火는 곧 眞陽이고 元陽이며 眞氣이고 正氣요 元氣이며 生氣라고 闡明하여 前賢未發의 精微深奧한 理致를 開拓함으로써 漢醫學史上 하나의 劃然하고 巨大한 座標를 設定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眞陰을 配慮하여 以滋化源 하면서 相火를 至重하게 여겨, 均衡과 調和로서 陰陽을 俱全하게 하는 것이 진실로 인간이 保生化生할 수 있는 機轉이라는 것을 醫學史上 처음으로 명확하게 闡明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眞陽이 偏虛한 芻蕘庸衆들을 益火之法으로 調補하여 起死回生할 수 있게 한 奇績은 千歲를 두고 燦然하게 되었다.

    이러한 張景岳의 醫論이 우리나라에 傳來되면서 周命新의 ≪醫門寶鑑≫, 惠庵 黃度淵의 ≪方藥合編≫, 東武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 石谷 李圭晙의 ≪醫鑑重磨≫, 晴崗 金永勳의 ≪晴崗醫鑑≫ 등을 風靡하게 되었으며, 특히 趙憲泳의 ≪通俗漢醫學原論≫은 아예 ≪景岳全書≫의 紹介書이고 解說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近世 우리나라 醫學은 ≪景岳全書≫의 영향을 받지 않은 학자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距今 3백여 년, 本書 ≪景岳全書≫ 初版인 魯本이 康熙 39年(1700)에 출판된 이후 무려 40여 판이 續刊되기는 하였으나, 新版은 舊版의 誤謬를 대부분 踏襲하였을 뿐만 아니라 新誤를 增添함으로써 近世版本에는 많은 誤謬가 散在하고 있음을 目睹하게 된다. 그래서 뭇 版本을 精讀하면 四庫全書 王本 江本에서 많은 校訂을 하였음을 알 수 있고, 근래 宋本에서 가장 많은 校訂을 하였음을 把握할 수 있으나 그들도 적잖은 新誤를 범함으로써 ≪景岳全書≫를 考覽하여 好學精進하는 後學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게 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에 淺學菲才인 愚瞽가 桑楡景迫한 중에 僭濫하게도 二十星霜 동안 不避煩勞하고 校訂之大役을 堪當하면서 專心費力하고 聚精會神하여 十餘版本을 精密하게 校勘하고, 200여 引用 醫籍을 일일이 校證하면서 難澁한 語彙들을 함께 註釋하였다. 그러나 識見이 卑淺한 筆力으로써 大全書의 完全無缺한 整理에는 부족함이 많아 隔靴搔癢을 금할 수 없었다. 오로지 뜻있는 後學이 있어 이러한 聾瞽之見을 바로잡아 주기를 懇切히 바랄뿐이다.

    그리고 本書 執筆에 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신 保健福祉部 韓醫學硏究院 愼賢揆 박사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또한 많은 학문적 가르침과 격려를 아끼시지 않은 東國大學校 金基郁 學長님, 東方鍼灸社 空山居士 郭東烈 선생님께도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 그리고 후배 사랑하는 敦篤한 溫情으로 마지막 假本에서 全書를 精密 校閱하여 주신 大韓韓藥協會 元老學者 松汀 金教熙 선생님께도 이 지면을 통해 깊은 감사와 함께 絶倫하신 학문에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4대 家寶로 所藏한 袖珍本 ≪景岳全書≫를 校勘에 활용하도록 欣快히 貸與하여 주신 淸陽 李鍾琴 선생님의 敦厚한 情誼에 정중히 감사드린다. 또한 파일관리와 편집에 많은 도움을 주신 呂寅京 선생님에게도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古書 考覽에 도움을 주신 慶熙大學校 중앙도서관, 東國大學校 중앙도서관, 啓明大學校 동산도서관, 安東大學校 도서관 담당자들에게도 이 지면을 빌어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끝으로 杜塞撰著인 ≪校註景岳全書≫가 先學들의 遺志인 廣濟蒼生하는 仁心을 받들어 後學들에게 醫籍考覽에 다소나마 도움이 된다면 다시없는 榮光으로 생각하고, 天下人類가 拯濟無窮의 恩澤으로 駐顔長春하여 同躋壽域하기를 懇望하며 삼가 弁語하노라.
    戊戌(2018) 菊秋大韓韓藥協會 學術委員長 杏林埜人 權三壽 謹識
    校註景岳全書 跋辭
    張景岳은 本名이 介賓이고, 字는 會稽 출신이라서 會卿이며, 號는 仲景을 尊師重傅로 推仰한다 하여 景岳이라 하였고 別號는 通一子인데, 明代 嘉靖 42年(1563年)에 出生하여, 崇禎 13年(1640年)에 卒하니 享年 78歲를 長壽한 醫學者로서 紹興 외곽의 會稽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매우 지혜로워 배우고 독서하기를 즐겨하였으며, 특출한 사람들이나 뛰어난 선비 그리고 현인들이나 재능 있는 사람들과 師友를 넓혀 갔다. 京師에서 名醫 金夢石으로부터 醫術의 理論과 實技를 傳受하였으며, 아버지 張壽峰으로 부터도 ≪黃帝內經≫을 배우고 익혔다. 따라서 稍長에서부터 醫學分野에 造詣가 깊었으며, 該博하고 精密한 高度의 醫療技能을 소유함으로써 能通能達한 醫家의 자질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으로 諸子百家를 널리 탐독하고, 經書와 歷史에 깊이 通達하였으며, 先哲諸家들의 顯達한 文集에 이르기까지 博覽載籍하여 曲暢旁通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리고 天文, 地理, 兵法, 易理, 術數, 音律 등에 대해서 能히 深奧함을 會通하였다.

    晩年(대략 1636~1637年)에 餘生을 奮發하여 마침내 畢生의 學識과 經驗들을 기울여 ≪景岳全書≫64卷을 100萬餘字로 지었으니, 실로 先學들의 精義를 두루 採擇하고 心得한 前人未發의 玄微로움을 闡揚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內經≫의 醫學理論을 根幹으로 삼아 各論 冒頭에 ‘經義’를 第一題로 設定하였다. 그리고 ≪景岳全書≫의 八門 중 ≪傷寒典≫은 당연히 ≪雜病謨≫에 合編되어야 하지만 仲景을 尊師重道로 尊崇하면서 仲景의 ≪傷寒典≫을 分離하여 門類를 八門으로 具色을 맞추는 絶妙한 體裁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특히 景岳 자신이 創方한 189方 중에서 상당수의 處方들은 深痼한 痼疾病에서 起死回生시킬 수 있는 不朽의 長桑禁方으로 자리매김하여 垂惠無窮하게 되었다.

    그러나 책이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기 當代에 出版을 못하고 景岳은 世上을 떠났다. 그 뒤 4년 후에 明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세상은 어지러워지고 어디에서도 財政的 支援을 받을 수 없게 되었는데, 이에 더하여 흉년이 거듭됨으로써 모두가 塗炭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上梓할 수 없게 되었으니 실로 哀惜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全書의 玉稿는 그의 외손자 林日蔚가 淸나라 康熙帝 39年(1700年)에 이르러 비로소 廣東布政使 謙庵 魯超의 도움으로 廣州에서 初版을 刊行하게 되니 이른바 魯本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실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 渡世之津梁이요 濟衆之寶筏이며 長桑禁方같은 훌륭한 珍書가 하마터면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오로지 외손자 林日蔚의 효성 덕분이었다. 저자인 景岳이 1640년에 捐世하고 꼭 60년 만인 1700년에야 비로소 출판되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으니, 이는 곧 ≪褚氏遺書≫에 버금가는 일로서 感慨無量함을 금할 수 없다. 생각건대 60년이란 세월은 인간의 2세대를 훌쩍 지나는 기간이니 얼마나 긴 세월인가! 이 긴 세월을 이어준 사람은 오직 林日蔚와 魯超일 뿐이다. 이로써 우리 후세인에게 張景岳의 廣濟蒼生의 恩澤이 無窮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景岳一家의 世居地가 越나라 首都였던 紹興이었는데, 紹興에서 廣州까지 무려 1,488km나 되는 머나먼 길을 수레에 原稿를 싣고 가서 출판할 수 있게 한 외손자 林日蔚의 至高한 孝誠과 登梓를 위한 熱誠的 功績도 看過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濟世之慈航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으면서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 수 있게 출판한 廣東布政司 魯超와 함께 후세 인류 康寧을 위해 위대한 일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愚瞽는 不惑에 이르도록 懦弱하여 醫藥理論에 基礎가 부족함이 많았던 淺學菲才로서 桑楡暮景에 纔窺醫理하였으나 서둘러 精進하여 본서를 정리하게 됨에 識見과 能力의 한계에 逢着하여 隔靴爬癢을 금할 수 없었던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人能勝天이라는 張景岳의 遺訓과 他界하신 尹在昌 선생님의 跬步不休 跛鼈千里라는 座右銘을 본받아 愚公移山이나 磨杵成鍼하는 覺寤로 좌절하지 않고 다시금 奮發함으로써 全書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는 오로지 左右逢源으로 주위에서 指導하고 激勵하여 주신 분들의 後援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어찌 愚瞽 혼자만의 노력으로써 이러한 大業을 완성할 수 있었을까? 회고하면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自古로 책을 校訂한다는 것은 먼지를 쓸어내는 것과 같아서 쓸고 나서 돌아서면 생기는 게 먼지(校書如掃塵 旋掃旋生)라고 하였거늘, 愚瞽도 한번 교정하는 데만 무려 6개월이 걸렸다. 이 힘든 校訂 작업을 八回를 反復하면서 제 自身이 精疲力竭되는 痛楚를 堪當해야만 했다. 이는 오로지 어느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순간순간의 休息으로 心身을 挽回하며 힘든 煩勞를 극복하고 切磋琢磨함으로써 全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이에 오로지 本書를 考覽하는 後學들은 이러한 聾瞽之愚衷을 헤아려 景岳의 醫論을 바르게 理解하고 廣布함과 동시에 濟世之津梁이요 馨香珍書인 ≪景岳全書≫의 保存이 千歲를 두고 陸續하기를 간절히 바라며, 時疫이 猖獗하는 渦中에도 불구하고 本書 梓行에 힘써주신 천광인쇄사 韓明勳 사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면서 이에 삼가 跋한다.
    戊戌(2018) 菊秋杏林埜人 權三壽 謹跋
    校註景岳全書
    독후감-1
    2021.10.09
    김기욱 근상
    • 전)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장
    •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원전・의사학교실 주임교수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장
    • 한의학박사
    ≪景岳全書≫가 출판 이래 300여년이 지난 뒤, 최근 우리나라에 있어
    기념비적 사건인 ≪교주경악전서(校註景岳全書)≫가 출간되었다.
    바로 경주(慶州)에서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계시는 한약업사(韓藥業士)이신 장계(長溪) 권삼수(權三壽)옹(翁)께서 80평생을 초지일관(初志一貫)으로 한문(漢文)과 동양의적(東洋醫籍)을 박람군서(博覽群書)하시어 필생의 역작을 탄생시켰다.
    탄생을 직접 지켜보다..
    • 장계옹(長溪翁)의 온화한 성품에 비하여 책을 쥐는 순간만큼은 학문적 태도가 너무도 엄격(嚴格)하시어 단 한 글자의 오자(誤字)도 허락하지 않았다.
    • 기존의 출간된 ≪景岳全書≫의 오자(誤字)와 탈간(脫簡)된 문자에 대하여 정말 기나긴 세월 동안 중국(中國)과 대만(臺灣) 그리고 전국의 대학도서관을 직접 방문하시고 관련된 여러 판본들을 일일이 교감(校勘)하고 교증(校證)하시었다.
    • 심지어는 옹(翁)께서는 우리나라 도서출판(圖書出版) 역사에 있어 처음으로 “만약 100만 글자가 넘는 원문에 단 한 글자라도 오탈자(誤脫字)가 있다면, 글자 당 일 만원의 현상금(懸賞金)을 보상하겠다.”고 선포(宣布)하셨지만 이 책이 출판 15개월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현상금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으니 마저성침(磨杵成鍼)한 각고의 노력과 서적의 완벽성을 짐작할 만하다.
    더욱이 ≪景岳全書≫ 출판 이래로 어떤 학자도 정확하고 명쾌하게 해석하지 못하였던 난해(難解)한 문장들을 권삼수 편 ≪校註景岳全書≫에서는 쉽고 바르게 풀이해 두었음을 확신(確信)하며, 동도(同道)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옹(翁)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동시(同時)에 한의학의 전공자의 교육과 임상 현장의 현자(諸賢)들에게도 감히 권독(勸讀) 드립니다.
    校註景岳全書
    독후감-2
    ≪東醫寶鑑≫을 전란이나 유배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집필한 許浚선생의 삶을 기려 ‘執念’이라 하는데, 權長溪翁의 ≪校註景岳全書≫는 부록까지 포함하여 2235쪽의 방대한 원고를 직접 작성하고 대중서가 아닌 전문서적을 직접 출판 한 저자의 노력과 집념은 인간 한계의 무한함을 느끼게 한다.
    1700년 발간된 초판인 魯本에서부터 후대의 50여 판본을 비교하여 誤脫字와 衍字를 교정한 ≪校註景岳全書≫는 321년 ≪景岳全書≫ 역사상 가장 정확한 판본이라는 믿음이 간다. 오자에 대한 현상금을 공모하는 저자의 자신감과 여전히 지급 소식이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로써 “校書如掃塵 旋掃旋生”이라는 고인들의 교서에 대한 定論이 무색하게도 거의 완벽한 ≪景岳全書≫가 탄생하게 되었다. 고서를 대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동아시아 전통의학을 전공하는 후학들에게 학문하는 태도에도 귀감이 되는 대작이다. 저자의 전공분야에 대한 탐구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21. 09. 15
    부산대학교 한의전문대학원 원장 한의학박사 권 영 규
    校註景岳全書독후감-3
    ≪校註景岳全書≫ 추천에 붙여서
    이론적 기초가 확립
    深奧한 한의학의 이론은 한의학의 聖典이라고 할 수 있는 ≪黃帝內經≫에서 이론적 기초가 확립되었고, 임상적 기초는 張仲景의 ≪傷寒論≫에서 정립되었다고 할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 다채로운 이론과 풍부한 임상경험에 의한 한의학적인 결실은 唐宋代를 거처 金元時代 이후인 明淸代에 이르러 보다 화려한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景岳全書≫는 明代의 張景岳(1563~1640)이 古稀를 넘은 1637년경에 편찬한 것으로 명대의 대표적인 종합의서가 되었다. 그 내용이 광범위하면서도 정밀하고, 또 논리적이면서도 상세하게 ≪內經≫의 이론이 충분히 담겨져서 한의학의 기초이론은 물론 임상 각 분야의 근본적인 진단이나 치료에 꼭 필요한 寶鑑이라 하겠다. ≪景岳全書≫는 1700년에 처음으로 魯本이 발간된 이후 40~50여 판본이 속간되었으나 誤脫字가 많아 著者가 의도한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述者가 2002년에 교수 안식년을 맞아 청년시절부터 보다 나은 韓醫學의 繼承발전을 위한 경험방을 수집하기 위하여 계획했었던 韓醫藥探訪으로 전국을 순회 할 때 長溪 선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짬짬이 교류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생각된다.
    ≪景岳全書≫는 지금까지 많은 판본이 출간되었으나 미흡하고 아쉬움이 있었기에 長溪翁의
    ≪校註景岳全書≫ 편찬은 原著者 張介賓의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冊子가 되었을 것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싶다.
    게다가 誤謬에 대한 공모를 현상금까지 걸었으니, 韓・中・日 3국뿐만 아니라 천하에 제일가는 精本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바이다.

    특히 原書講讀이 疎遠해져 韓醫學의 深奧한 원리가 약화되는 듯한 노파심을 감출 수 없는 오늘날, 많은 한의약계 제현과 후학들이 열독하여
    景岳 張介賓의 오묘한 원리를 임상에 널리 활용할 수 있도록 하여 한의학의 내일을 밝게 하여 주기를 바란다.
    2021. 09. 30
    전 상지대학교 한방병원장 석좌교수 한의학박사 은백 박희수
    ≪校註景岳全書≫ 독후감
    대구광역시 보광한의원 원장
    2021.10.10
    최 순 화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다루는 의학서적의 원문이 잘못되어 있다면 우리는 본의와는 다른 해석을 하게 되고 또 다른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東醫寶鑑≫을 펴낼 적에 이러한 일을 경계하여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일기>조에는 “藥名病方, 小有差誤, 則關係性命…약명과 처방은 조금이라도 착오가 있으면 사람의 목숨에 관계가 된다.”고 하였으니, 의약에 관계되는 출판물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이니 추호라도 오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각별히 주의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景岳全書≫는 1700년에 초판인 魯本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50여 판본이 출판되었으나 訛誤가 매우 많았다. 그런데 校訂의 역사를 보면 1778년 四庫全書, 1914년의 王本, 1917년의 江本, 1991년의 宋本에서 많은 교정을 하였으나 이들 판본에도 誤脫字와 衍字가 파다하며 아울러 원서의 본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이와 같은 ≪景岳全書≫의 출판 현실에 대하여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장 權長溪선생께서 크게 분발하여 이십여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로써 세상에 빛을 보게 된 ≪校註景岳全書≫는 비교적 잘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심지어 저자가 본서 원문 100만자 중에서 단 한 글자라도 잘못된 부분을 찾으면 현상금을 준다는 광고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잘못된 부분을 찾은 이가 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저자보다 더 많은 자료의 수집과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이후라도 ≪校註景岳全書≫의 본문 오류의 부분은 찾아내지 못할 것 같다. 따라서 ≪校註景岳全書≫는 張景岳의 외손인 林日蔚가 廣東布政司 魯超의 도움으로 출판한 ≪景岳全書≫ 초판 이후 거금 321년 동안 간행된 ≪景岳全書≫ 중에서 가장 정확한 판본이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으며 同途諸賢들의 정독을 권해 본다.
    ≪校註景岳全書≫ 독후감
    ≪景岳全書≫는 醫書를 넘어 萬古不變한 天地自然의 理致를 統論한
    冊으로서 읽을수록 意味가 深奧함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所重한 書籍을 冊床에 놓고 수시로 열람하게 된즉 家寶가 아닐 수 없다.
    저자가 이 방대한 ≪校註景岳全書≫를 출판하면서 우리나라 출판물 사상 처음으로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오자에 대한 공모를 하였으나 1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자의 오자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바로 원문이 100만 자나 되는 거질의 醫籍이 거의 오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校註景岳全書≫는 정확도 면에서 ≪本草綱目≫에 버금가는 版本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대한한약협회의 원로학자로서 博覽群書하고 旁通載籍하여 聰識絶倫한 松汀 金敎熙 선생께서 일찍이 ≪校註景岳全書≫를 세밀하게 교열하였을 때 일주일간을 淸覽한 후 “이 책은 훌륭한 보배다”라고 말씀하신 것이 이제 현실화 되었다고 보여진다.

    고인들은 校書에 대하여 “校書如掃塵 旋掃旋生”이라 하였다. 즉 책을 교정한다는 것은 먼지를 쓸어내는 것과 같아서 쓸고 나면 곧바로 먼지가 생긴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교서에 대한 定論이 무색하게도 완벽한 ≪景岳全書≫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것은 실로 인간 능력의 한계에 도전한 저자의 학문 탐구에 대한 열성적인 진면목을 헤아릴만한 대목이라 하겠다. 過煩한 關係로 讀者들에게 負擔이 되었던 ≪景岳全書≫를 一目瞭然하게 정리하여 發刊해주신 長溪 權三壽 先生님께 再三感謝드립니다. 바라건대 遷延歲月의 난치병을 一擧一劑에 起死回生시킬 수 있고 남의 귀중한 생명을 장구하게 지켜줄 수 있는 良醫가 되려면 모름지기 이와 같은 貴重한 珍書를 항상 案頭에 두고 閱讀하실 것을 삼가 권장한다.
    2021. 10. 10
    대한한약협회 명예회장
    명예교육학박사
    양 복 규
    ≪校註景岳全書≫ 독후감
    漢醫學 정통 후세방파의 鼻祖인 景岳 張介賓이 편찬한 ≪景岳全書≫는 明나라 말기인 1638년경에 저술되었으나 당시 明나라는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피폐로 인해 저자는 출판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영면하고 말았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60년이 지난 1700년에야 비로소 그의 외손자 林日蔚가 廣東布政使 魯超의 도움으로 발간한 책으로서 漢醫學의 原論으로부터 臨床各論에 이르기까지 두루 망라한 尨大한 醫書인데, 고전으로서의 의미뿐만 아니라 실용적 가치가 매우 뛰어난 必牘書이다.
    長溪 權三壽 선생은 80평생을 初志一貫으로 漢文과 東洋醫籍을 博覽群書하여 깊히 연구한 淸貧한 학자로서 현재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일찍이 ≪大韓韓藥協會百年史≫를 집필하였을 뿐만 아니라 ≪東醫驗方續纂≫의 편집과 학술지 ≪大韓韓藥≫을 여러 차례 편집하는 등 협회에 학술적 기여가 많았다. 長溪 선생은 이십여 星霜을 盡心竭力으로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校註景岳全書≫를 梓行하게 된 것이다.

    이 ≪校註景岳全書≫는 編者가 기존 ≪景岳全書≫를 열독하면서 誤.脫字가 파다함을 발견하고 심기일전으로 분발하여 이를 바르게 교정코자 중국과 대만 그리고 전국의 대학도서관을 발품 팔아가며 초판부터 지금까지 발간된 여러 版本을 校勘하고 수백 권의 관련 醫籍들을 일일이 校證하여 誤.脫字을 발견하기까지 한평생을 바쳐 編修한 漢醫學 書籍이다.

    편자가 원문이 100만 자가 넘는 방대한 이 ≪校註景岳全書≫에 우리나라 圖書出版 사상 처음으로 오탈자 一字에 일 만원의 懸賞金을 걸었으나, 출판 16개월이 지난 작금까지 단 한 자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磨杵成鍼하는 각고의 노력으로 이룩한 이 책의 완벽성을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

    더욱이 ≪景岳全書≫ 출판 이래 3백여 년이 지나도록 그 어떤 학자도 바르게 해석하지 못하였던 難解한 문장들을 이 ≪校註景岳全書≫를 통해 쉽고 바르게 풀이한 책이다. 따라서 본서는 依經據典에 의한 풍부한 주석과 함께 많은 訛誤의 裁訂을 하였음은 물론 관련 典籍의 校勘•校證에 더하여 難解文章의 精解 등에서 국내외를 통틀어 絶類逸群의 독보적인 書籍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同道의 길을 걷는 사람으로서 그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諸賢들의 一讀을 권하는 바이다.
    2021. 11. 05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장
    한의학박사
    이 재 동
    ≪校註景岳全書≫ 추천서
    ≪景岳全書≫는 명대 張介賓이 撰한 의서로 64卷으로 되어 있는 종합의서이다. 이 책은 명대 종합의서 중 가장 뛰어난 성과물의 하나로 평가받는데, 먼저 ≪內經≫, ≪難經≫, ≪傷寒論≫, ≪金匱要略≫의 내용에 역대 의가들의 의학정수를 결합하여 만들었다. 내용 중 「傳忠錄」은 뛰어난 문장과 의학의론에 대한 저자 본인의 견해를 잘 나타내었으며 처방을 古方과 新方으로 나누는 동시에 무관출신 답게 八陣이라는 개념으로 적[病邪]을 물리치기 위한 陣法을 제시하였다.
    張介賓은 字가 會卿이며 號가 景岳이다. 명나라 시기 山陰 會稽縣(지금의 浙江省 紹興) 사람으로 1563년에 태어나 1640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張介賓은 의학사에서 命門學派 또는 溫補學派에 속하는 의가로 한의학에서 腎命門의 기능을 중시하여 따뜻한 성질의 약을 써서 인체의 命門火를 補하는 의론을 세웠고, 필연적으로 찬 성질의 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劉完素와 朱丹溪를 「傳忠錄」에서 신랄하게 비판한 기록이 있다.

    조선에도 ≪景岳全書≫가 전해졌다. 조선후기부터 현재까지 한의학의 일가를 이룬 사람들을 살펴보면 ≪東醫寶鑑≫을 중시했던 사람들, ≪醫學入門≫을 중시했던 사람들, ≪景岳全書≫를 중시했던 사람들이 있어 학계에서는 東醫寶鑑派, 醫學入門派, 景岳全書派라고 칭할 정도이다.
    ≪東醫寶鑑≫이야 우리 책이기에 그간 刊本에 대한 연구는 충분히 진행되었으나 ≪醫學入門≫과 ≪景岳全書≫는 그러지 못한 측면이 있다.

    入門先天圖說의 “學易而後可以言醫”에는 未達하나 권삼수 대한한약협회 학술위원장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景岳全書≫의 판본을 고찰하고 정본을 만들기에 오랜 시간을 들여 세상에 誤字 없는 ≪校註景岳全書≫를 출간하였다고 하니 그 노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한의학을 전공하는 많은 臨床家들에게 可히 추천하는 바이다.
    2021. 11. 05.
    대구한의대학교 명예총장
    한의학박사
    변 정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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