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논단

張景岳의 君相兩畵圖

君相兩火圖 解說
위의 도표는 愚瞽가 ≪校註景岳全書≫를 출판한 후에 張景岳의 핵심 학문인 命門에 대한 생체학적 이론을 究察按證하여 일목요연하게 한 장의 도식으로 표현한 내용이다. 결론부터 定義하면 命門은 인간 太素의 化生之門이요 생명의 源泉으로서 先天元氣인 腎을 鞏固히 하고, 아울러 後天元氣인 脾를 管掌 하는 至貴至重한 橐籥인 것이다.

대저 사람의 몸에는 두 개의 火가 있으니 곧 君火와 相火이다. 君火란 心中에 내재된 火이니 인신의 모든 기능을 조절해야 하는 명령을 내리는 기관으로 인식하였고, 相火란 命門之火를 달리 이르는 말인데, 君火의 명령을 따라서 인체의 각 대사기능을 도맡아 조절하는 相臣과 같은 火로서 元氣・生氣・眞氣・元陽・眞陽・眞火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를 인간생명의 탁약(橐籥)이라고 간주하였으니, 바로 인간이 생명을 영위하는 원천적인 에너지인 原動力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相火는 위로는 脾胃를 溫養하고 아래로는 陰陽이 흡합(翕合)함으로써 변화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지중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黃帝內經 天元紀大論≫에서 “君火以明 相火以位”라고 하였는데, 이를 번역한 모든 출판물들이 “君火는 상부에 있어 밝음에 있고 相火는 아래에 위치함에 있다”라고 풀이 하였으나, 본인이 문맥을 詳考해본 결과 “君火以明決 相火以位育”이라고 부연설명해야 맞는 말이다.

이를 다시 詳論하면 君道의 明決이란 위에서 두루 살펴서 신체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사리에 밝아 명철하게 英明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化育하는 君主가 되고, 相道의 位育이란 아래에 位置하면서 君道의 神明한 명령을 받들어 모든신체의 각부가 제자리에서 안정되게 化育할 수 있는 大業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에 대한 더 상세한 내용은 ≪校註景岳全書≫ 부록편 “命門微義와 그 定論”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렇게 愚見을 천명하는 이유는 시중에 나와 있는 ≪黃帝內經≫의 모든 번역서들의 설명이 실제 내용과 거리가 멀고 미흡하여 특별히 이 부분을 다시 밝혀두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眞陽과 眞陰이 결합하여, ‘氤氳翕合’이라는 말은 달리 ‘絪縕翕合’ 이라고도 하는데 陰陽의 기운이 왕성하게 화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이고, ‘作强化生’ 이란 왕성한 陰陽의 기운이 화합함으로써 전광석화같이 지극히 짧은 순간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변화하여 造化의 攝理에 응하여 새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말이니, 이는 곧 인간생명의 탄생을 高度의 醫學的 술어를 동원하여 표현한 말이다. 이는 곧 ≪素問 刺法論≫에서 말한 “腎者 作强之官 伎巧出焉”에서 근원하는 이치이다.
漢醫學의 四大醫聖과 經權
대저 東洋醫學에서 醫學的 理論이나 經驗과 技法 그리고 處方 등에 功績을 남긴 학자가 수없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는 우선 후세인들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處方을 남긴 학자들의 功績을 觀照해 보고 그 恩澤을 후세에 길이 顯揚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論證의 대상이라면 단연코 永遠不朽의 名方으로는 李東垣의 諸證氣虛에 補中益氣湯, 血脫益氣에 益胃升陽湯, 客寒犯胃 撞心而痛에 草豆蔲丸, 暑證에 淸暑益氣湯, 酒病에 葛花解酲湯, 痰厥頭痛에 半夏白朮天麻湯, 脾胃虛弱 怠惰嗜臥에 升陽益胃湯, 袪風勝濕에 羌活勝濕湯, 脾胃虛弱 不思飮食에 升陽除濕湯, 脾胃虛弱 食卽嘔吐에 藿香安胃散, 濕熱所傷 體倦少食에 調中益氣湯, 大頭瘟病 憎寒壯熱에 普濟消毒飮 등을 예로 들 것이다.
그리고 陳無擇의 不換金正氣散과 溫膽湯 控涎丹 大黃左經湯 復元丹, 嚴用和의 導痰湯과 實脾散 芎歸湯 蔘附湯, 錢仲陽의 錢氏白朮散과 六味元, 楊士瀛의 蔘芪湯과 蓮子六一散, 薛立齋의 國老膏와 四神丸 柴胡淸肝散 抑肝散, 張潔古의 枳朮丸과 三和湯, 劉河間의 防風通聖散과 益元散, 朱丹溪의 瓊玉膏와 六鬱湯, 王璆의 紫金錠과 都梁丸 除濕湯, 萬密齋의 柴胡四物湯과 龍腦安神丸, 龔廷賢의 芎歸補血湯과 調經種玉湯 托裏消毒飮, 危亦林의 萬金湯과 勝濕湯 加味四七湯 寧志丸 芎芷香蘇散 滑石散 蓽撥丸, 虞摶의 斑龍丸과 麥門冬湯, 陶節菴의 陶氏平胃散 六一順氣湯 黃龍湯 陶氏冲和湯 陶氏補中益氣湯, 陳自明의 加味歸脾湯과 四味白朮湯 保生湯 등등 끝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후세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표준적인 準繩과 같은 醫方書로는 宋朝 元豊 3年(1080)에 太醫局에서 당시까지 전래해온 유용한 처방들을 모두 彙集한 十卷의 醫方書인 ≪太平惠民和劑局方≫이 있는데, 달리 ≪和劑局方≫이라 부르거나 아예 줄여서 ≪局方≫이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基本的인 標準處方들이 가장 많이 수재되어 있는데, 例하면 二陳湯 平胃散 四君子湯 四物湯 十全大補湯 蔘苓白朮散 至寶丹 紫雪丹 蘇合香元 牛黃淸心丸 藿香正氣散 香蘇散 香薷散 逍遙散 蔘蘇飮 人蔘敗毒散 失笑散 八正散 戊己丸 川芎茶調散 附子理中丸 三拗湯 半硫丸 無比山藥丸 人蔘養榮湯 眞人養臟湯 蘇子降氣湯 香連丸 肥兒丸 來復丹 靑娥丸 등이 採錄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 처방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 당시까지 전해온 諸家들의 실용적인 方劑들을 彙集한 것이지 어느 특정한 개인이 創方한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처방을 收載한 醫方書로는 明朝 萬曆 13年(1602)에 宇泰 王肯堂(1549~1613)이 集成한 ≪證治準繩≫이라 하겠다. 이는 달리 ≪六科證治準繩≫이라고도 하는데, 이 全書는 ≪雜病證治準繩≫8卷, ≪類方證治準繩≫8卷, ≪傷寒證治準繩≫8卷, ≪瘍醫證治準繩≫6卷, ≪幼科證治準繩≫9卷, ≪女科證治準繩≫5卷 등으로 編成되어 있는 尨大한 全書이다. 이 ≪證治準繩≫에는 明代 이전의 역대 醫家들의 치료경험을 종합한 후 자신의 견해를 밝혔으며, 病證과 脈狀을 변별하고 隨證論治가 整然하며, 採錄한 자료가 비교적 풍부하고 논술이 조리가 있으면서 비교적 명확하다. 그런데 이 全書의 ≪雜病證治準繩≫에는 各種雜病의 證治理論만 收載되어 있고 그 각론에서 논급한 處方들은 ≪類方證治準繩≫에 모두 收載되어 있으며, 여타 傷寒・瘍醫・幼科・女科의 ≪證治準繩≫에는 證治理論과 處方이 함께 附記되어 있다. 그리고 이 全書에는 막대한 수의 처방들이 採錄되어 있어 王肯堂 자신이 직접 創方한 처방이 몇 개나 수재되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당시까지 전해온 모든 처방을 빠짐없이 裒集함으로써 雜病 3,032方, 傷寒 512方, 瘍醫 1,265方, 幼科 2,965方, 女科 1,162方 등 무려 8,936方이나 수재되어 있다. 그리고 편집이 整然하여 一目瞭然함으로써 이 ≪證治準繩≫은 후세 많은 臨床家들의 醫方書 활용의 準例로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저마다 관점에 따라 다소간 차이가 있겠지만 愚瞽의 所信으로는 100個 이상 處方을 創方하여 후세의 질병치료에 크게 寄與한 학자들을 거론한다면 단연 後漢時代의 張仲景, 明朝의 張景岳, 淸朝의 陳士鐸, 朝鮮朝의 李濟馬 등을 들 수 있다. 庸醫들로서는 단 몇 개의 유용한 處方을 구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100個 이상의 名方을 새롭게 成方한다는 것은 神人의 경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필자는 敢然히 이 학자들을 東洋醫學의 四大醫聖이라 敬稱하고자 한다.

먼저 後漢時代 張仲景의 ≪傷寒論≫에는 모두 397法에 113方이 收載되어 있는데, 당시는 주로 傷寒疫癘에 활용하였으나 후세 醫家들이 이들 처방을 활용하여 諸般疾病에 基本方으로 활용하고 있어 가위 漢醫藥의 敎科書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전적으로 張仲景의 처방만으로 만병을 치료하는 學派를 古方派라 일컫는다.

그리고 明朝末期의 張介賓은 그의 著書 ≪景岳全書(1637)≫의 新方八陣에서 補陣 29方, 和陣 20方, 攻陣 6方, 散陣 17方, 寒陣 20方, 熱陣 25方, 固陣 10方, 因陣 62方 都合 189方을 創方하여, 종류별로 八陣으로 一目整然하게 收載하면서 “古方은 經이고 新方은 權”이라고 說破하였다. 이는 참으로 후학들에게 明辨한 垂訓을 한 것이다. 그러나 自古以來로 모든 醫籍들은 成書 당시까지 전해온 처방과 자신이 직접 立方한 處方을 구분하지 않고 그대로 收載함으로써 많은 考證을 하지 않고는 실제로 創方한 醫家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張景岳은 上古時代로부터 당시까지 전해온 處方을 八陣으로 分類하여 ‘古方八陣’이라 하였고, 自身이 創方한 處方을 ‘新方’이라 命名하여 역시 八陣으로 分類하였으니, 半萬年 醫學史上 처음으로 유일하게 活用者의 便宜性을 極大化하였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陳士鐸은 4천년의 時空을 超越하여 神交로 軒轅黃帝의 王師인 岐伯과 後漢時代의 長沙太守인 張仲景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들 兩師가 口授한 내용을 정리한 ≪辨證奇聞(1879)≫ 12卷 125門 5篇에는 무려 1,366方이 收載되어 있는데, 그들 처방 하나하나가 深痼한 難治病에 奇效良方이 頗多하다.

마지막으로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成書1894~刊行1901)≫에는 四象處方으로 少陰人 66方, 少陽人 36方, 太陰人 52方, 太陽人 14方으로 모두 168方이 收載되어 있다. 東武 李濟馬는 四象醫學으로서 體質的 분류를 통해 처방을 간소화하여 臨床要訣을 體系化함으로써 일반 對證處方의 浩繁함을 拂拭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아쉬운 것은 補中益氣湯 半夏白朮天麻湯 淸暑益氣湯 益胃升陽湯 葛花解酲湯 등등을 創方하여 脾胃가 素弱하면서 食飮不節 起居無時에 時代的으로 施藥過誤 등으로 脾胃가 殘傷하여 困苦하는 蒼生들을 起死回生하는 指南을 提示함으로써 후학들의 활용에 많은 도움을 준 東垣 李杲가 醫聖 班列에 오르지 못한 것은 끝내 愛惜함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東垣이 ≪東垣十書≫에서 內外傷辨惑論 脾胃論 蘭室秘藏 같은 고차원의 論述을 하면서 溫補脾胃 先實脾土를 주장한 것은 前人未發의 큰 공적이며, 신 같은 경지에서 그 많은 처방들을 창방하여 후세에 전함으로써 燦然한 그의 업적들이 垂惠無窮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불민한 愚瞽가 일정한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四大醫聖의 班列에 함께 올리지 못함을 송구스럽게 사료되고 不侫한 후배로서 깊이 사과드린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비록 100개 처방이라는 수에는 미달하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一當百의 處方들을 創方함으로써 역시 醫聖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삼가 경건한 마음으로 東垣先生의 명복을 기원한다.

그리고 세상만사에는 常變에 酬應하여 ‘經權’이 있다. ‘經’이란 經常的으로 一定不變의 原則을 말한다. 따라서 日常起居에서부터 禮法에 이르기까지 準則이 있으며, 生老病死 어디에나 經常不易의 原則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權’이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臨機應變으로 적절하게 일을 처리하는 수단을 말하는데, 달리 權變・權道・權宜・權時라고도 한다. 그러나 臨機應變을 실천함에는 먼저 명철한 識見으로 的確한 판단이 선행되어야 하고, 다음으로 적절한 시기에 용기있게 과감한 實踐이 뒤따라야 비로소 權道의 효용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때를 놓치면 결국 死後藥方文을 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同途하는 醫藥에도 經常的인 原則이 있으니, 예를 들면 血虛에는 四物湯, 氣虛에는 四君子湯, 痰飮에는 二陳湯, 傷食에는 平胃散, 傷寒에는 麻黃湯, 傷風에는 桂枝湯, 淸熱利水에는 四苓散 등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病의 진행이 常度를 잃고 變證이 百出하는데 원칙에만 구애되어 변통할 줄 모른다면 결코 구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곧 형수의 손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예절에서의 원칙 때문에 급류에 떠내려가는 형수를 건져주지 않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自古로 拯溺救焚함은 人之常道 일진대, 목전에 바로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구해주지 않는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따라서 특별한 變證에는 특별한 처방이 필요하니 이것이 바로 權宜 權道이다.

그리고 寒熱溫凉 四氣는 春夏秋冬의 主氣이다. 그런데 이 主氣가 弱하고 風寒暑濕燥火의 客氣가 勝하면 主氣를 버리고 客氣를 따라야 하는 것이 바로 權道이다. 다시 敷衍하면 겨울엔 추워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반대로 겨울인데도 따뜻하면 이는 客氣가 勝한 것이니 비록 겨울이지만 寒劑를 投與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權宜라는 것이다. 만약 겨울인데도 大熱이 발생하면서 脈數洪大하고 口燥煩渴 便結譫語하면, 비록 겨울이지만 寒劑를 사용해야 마땅한데 겨울에는 반드시 溫熱劑를 투여해야 한다는 원칙에만 구애된다면 치유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流金爍石의 盛夏임에도 縱嗜酷嗜 生冷酒漿하면 伏陰이 쓰며들고 마침내 客寒犯胃하여 腹痛泄瀉를 하게 된다. 이때는 時令따라 사용하는 一定不變의 원칙을 버리고 證狀에 따라 溫熱劑를 投與해야 奏效할 수 있으니 이른바 舍時從證의 權道的 治法이다.
이에 張景岳은 經常的인 證治를 正法이라 하고 隨證應變하는 證治를 奇法이라 하였다. 따라서 後學들은 張景岳이 말한 “用藥處方이 最宜通變이며 不可執滯”라는 明訓을 刻骨銘心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거론한 四大醫聖의 처방 중에서 張仲景의 처방은 거의가 經常的으로 原則的인 處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또 ≪太平惠民和劑局方≫도 거의 標準的인 처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張介賓의 ≪景岳全書≫ 新方이나 陳士鐸의 ≪辨證奇聞≫에는 거의가 특별한 奇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東醫壽世保元≫에는 대부분 체질적 基本方을 담고 있으나 상당수 權道의 處方도 포함하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이 大經大法으로 神化莫測한 奇方을 成方한다는 것은 평범한 庸醫로서는 상상 밖의 일이고 오로지 神의 境地에 到達한 醫家만이 할 수 있는 神術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위의 四大醫家들은 正法과 奇法을 自由自在로 활용하였으니 이들의 처방 중에는 奇想天外한 처방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黃度淵은 ≪方藥合編≫에서 ≪景岳全書≫의 33處方을 收載하였고, 李常和는 ≪辨證方藥正傳≫에서 ≪辨證奇聞≫의 수다한 처방들을 附記하였다. 이로써 推量하면 ≪景岳全書≫와 ≪辨證奇聞≫에 수재된 處方들의 優秀性을 斟酌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張景岳의 新方八陣 處方과 陳士鐸의 處方들은 그 立方 趣旨를 理解하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들 立方의 基本的인 學理와 趣旨의 正鵠을 會通할 수만 있다면 누구나 바로 明醫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이에 대한 捷徑은 ‘經權’을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관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唐나라의 名醫 許胤宗은 ‘醫者는 意也’라 하였는데, 이는 “醫術의 깊은 眞髓는 마음으로 스스로 깨닫는 것이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自古로 학자들은 方劑의 最要는 變通이요, 古法에 拘泥되어 固執해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으니, 오로지 旣成處方을 精選하여 隨證應變으로 加減하는 것이 權道이다. 그러나 加減法도 古人들의 法度에 따라야지, 함부로 衆藥을 濫用하거나 滋補藥과 峻下藥을 并用하고 寒藥과 熱藥을 雜亂하게 混用하면 마침내 廣絡原野를 범하게 되고, 疑似難明한 경우에 확실한 執證을 하지 않고 猜摸嘗試하게 되면 北轅適楚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素問・離合眞邪論≫에서는 用藥에 無據하면 反爲氣賊이 되며 及其也 奪人正氣하고 絶人長命하니 予人夭殃을 범하게 된다고 경고하였다. 요컨대 醫家는 모름지기 오랜 세월동안 靜坐齋頭하고 博覽群書하여 醫理를 透得하면서 潛思熟計하여 依經據典으로 應病與藥이 精一해야 庸醫에서 明醫로 換骨奪胎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五常政大論≫에서 말한 必先歲氣하고 無伐天和하여 無盛盛 無虛虛해야 한다는 것은 醫學의 基本理論으로 절대적 원칙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適切한 臨機應變이 반드시 필요하니 張景岳의 주장대로 時證相違하면 舍時從證커나 證實脈虛하면 舍證從脈하고 脈實證虛하면 舍脈從證할 수 있는 慧眼이 있어야 바야흐로 眞醫가 될 수 있을 것이다.
戊戌(2018) 至月 上澣 杏林埜人 權三壽
命門微義와 그 定論
命門이란 무엇인가? 千古絶奇의 이 話頭에 대하여 어느 누구라도 一言之下에 짧은 말로써 명쾌한 대답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 東洋醫學 전반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그 機能은 인지할 수 있으나 形質을 갖춘 臟器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軒岐이후 많은 先學들의 論述들을 참고하면서 命門의 이해에 접근하고자 한다. 大抵 人身에는 腎이 두 개이니 右腎은 命門이요 左腎은 眞陰을 총괄하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東洋醫學의 定論이었다. 그러나 歷代 諸家들의 견해들을 두루 究索해 보기로 한다. 이에 대해서 오직 扁鵲이 ≪難經≫에서 말하기를 “腎은 두 개가 있는데 모두가 腎이 아니고 좌측에 있는 것은 腎이고 우측에 있는 것이 命門이다. 命門은 모든 神精 즉 생명활동을 영위할 수 있는 生氣를 가진 精이 머무는 곳이며 원래 氣가 연계되어 있는데, 男子는 精을 저장하고 女子는 胞와 연계되어 있다.”라고 하였다.

≪難經≫ 이후 漢・晉・隋・唐 시대의 醫書 중에는 전문적으로 언급한 것이 매우 적으며, 宋・金・元 시대에는 여러 醫家들이 이에 대해 언급은 하였으나 역시 깊이가 부족하였다. 明・淸 시대에 이르러 여러 醫家들이 命門에 관해 깊게 연구하고 논쟁하여 각자의 견해를 제기하였다. 어떤 이는 左腎을 命門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兩腎을 모두 命門이라 하였으며, 어떤 이는 兩腎 사이에 있는 것이 命門이라 하였고, 어떤 이는 命門이란 兩腎間에서 움직이는 氣라고 하였으며, 어떤 이는 命門은 元氣의 根源이고 水火의 宅이라 하였고, 혹자는 先天의 火 혹은 全身의 眞陽을 命門이라 하였으며, 혹자는 命門은 生命을 탄생시키는 門戶로서, 여자에게 있어서는 産門이고 남자에게 있어서는 精關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중에서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친 몇 가지 관점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元代의 伯仁 滑壽는 左腎은 腎이고 右腎은 命門임을 인정하였으나, 命門의 氣는 腎과 통하므로 두 개의 腎이란 실제로는 단지 하나일 따름이라고 하였다.
明朝에 이르러 虞摶은 ≪醫學正傳≫에서 兩腎을 모두 命門이라 한다고 명확히 밝혔는데, 그는 말하기를 무릇 두 腎은 모두 眞元의 근본으로 생명과 관계가 있다. 이는 비록 水臟이라 하나 실제로는 相火가 그 속에 머물고 있으므로 마치 수중의 龍火와 같아 그것이 動함으로 인해 발한다. 내 생각으로는 마땅히 두 腎을 모두 命門이라 해야 한다. 命門穴은 마치 문 사이에 세운 말뚝과 같아서 開闔을 관장하고 있다. 靜하면서 닫혀 一陰의 眞水를 함양하고, 動하면서 열려 龍雷의 相火를 북돋운다. 무릇 水는 변하지 않고 火는 변하는 것이다. 만약 右腎만을 相火로 보아서 삼초와 배합한다면 논리가 완벽해지지 않을까 두렵다고 하였다. 그는 또 命門의 주요 기능을 元氣의 근본으로 생명과 관계가 있음을 提起하였다.

朱丹溪는 ≪格致餘論・相火論≫에서 相火의 生理機轉에 관해 “하늘은 만물의 생성을 주관하므로 항상 움직인다. 사람도 이와 같은 생성이 있으므로 또한 항상 움직인다. 항상 움직이는 상태에 있음은 모두 相火의 행위이다”라고 더욱 자세히 설명하였고, 또한 “天은 火가 아니고서는 만물을 생성할 수 없고, 사람은 火가 아니고서는 생성이 있을 수 없다”고 하였다. 병리방면에 있어서는 相火가 妄動할 경우의 위험성을 더욱 강조하여 “火가 妄動하면 그 변화를 짐작할 수 없으며 시시각각으로 眞陰을 달구는데, 陰이 허해지면 발병하고 陰이 끊어지면 죽는다”고 하였다.

李梴은 ≪醫學入門≫에서 “腎이 2개가 있는데, 左腎은 水에 속하고 右腎은 火에 속하는바 무개가 각각 9兩으로 脊椎에 붙어있다. 命門은 아래쪽 右腎에 부치어 있으며 左腎은 眞精을 貯藏하고 右腎은 相火로서 元氣에 聯繫된다. 그러나 命門은 正臟이 아니고, 三焦도 正腑가 아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後世 諸家들이 모두가 말하기를 相火는 命門에 붙이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明末의 張景岳은 命門에 대해 虞摶의 견해와 같은 해석을 하였으니, 兩腎이 모두 命門에 속한다는 관점을 강조하였다. 그는 ≪類經・求正錄≫에서 腎은 둘이고 坎의 외부에 있으니 짝수이고, 命門은 하나이고 坎의 내부에 있으니 홀수이다. 하나로써 둘을 통괄하니 둘은 하나에 포함된다. 命門이 兩腎을 관할하므로 兩腎은 모두 命門에 속한다. 그러므로 命門은 水火의 府이고 陰陽의 宅이며 精氣의 바다이고 生死의 통로라고 하였다. 張景岳은 命門이 兩腎을 관할하므로 兩腎은 모두 命門에 속한다고 명확히 제시하였으니, 水腫論治에서 “脾土非命門之火 不能生이요 肺氣非命門之水 不能化”라고 하였고, 婦人門 腎虛經亂에서도 "左腎眞陰不足과 右腎眞陽不足"을 논술한 부분을 보면 곧 命門에는 命門水인 眞陰과 命門火인 眞陽이 있어 생명을 保全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命門의 주요 機能은 心火의 府이고 陰陽의 宅이며 精氣의 바다이고 생사의 통로임을 강조하였다. 후에 그는 또 ≪景岳全書・傳忠錄・命門餘義≫에서 더욱 진일보하여 命門은 元氣의 根本이며 水火의 집이다. 五臟의 陰氣는 이것이 아니면 滋養받지 못하고, 五臟의 陽氣는 이것이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여 命門에는 陰陽과 水火의 두 氣가 있는데 이 陰陽水火가 상호제약하고 상호 의지하여 작용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類經附翼・眞陰論≫에서도 命門의 火를 元氣라고 하고 命門의 水를 元精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張景岳의 이러한 論述은 命門이 단지 右腎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라 兩腎을 모두 관할하며, 내부에 水火・陰陽 즉 眞陰과 眞陽이 머무르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논점은 腎陰과 腎陽의 이론적 기초를 定立하게 되었다.

그리고 景岳은 命門을 精義하여 생명이 탄생하는 門戶라고 함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무릇 형체가 아직 성생되기 이전에 남녀가 交合할 때, 남자는 이 門을 통하여 배출하며 여자는 이 문을 통하여 받아들이고 태아를 자라게 하는 원기가 이곳을 통하여 나오는바, 배출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모두 이 門을 통하니 선천적인 생명의 문호가 아니겠는가? 胎兒의 신체가 형성되면 三焦의 精氣는 모두 여기 胎兒의 命門에 저장되는 것이다. 張景岳은 계속하여 그러므로 ≪金丹大要≫에서 ‘氣가 모이면 精이 가득하고 精이 가득하면 氣가 왕성해진다’고 하였다. 梁丘子는 ‘사람의 생명은 精에 달려 있다’고 하였고, ≪珠玉集≫에서는 ‘水는 三才의 시초이고 精은 원기의 근원이다’라고 하였다. 즉 精이 사라지면 氣가 없어지고 氣가 없어지면 생명이 끊어지는데, 그 튼튼함과 사라짐이 모두 이 門에서 비롯되니 또한 후천적인 생명의 문호가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다.

明代의 趙獻可는 腎은 命門이 없으면 作强하지 못하여 奇巧가 나오지 않고, 三焦는 命門이 없으면 三焦의 氣를 化生하지 못하여 水道를 소통 조절하지 못하며, 脾胃는 命門이 없으면 음식물을 소화하지 못하므로 五味가 運化灌注되지 못하며, 肝膽은 命門이 없으면 장군이 지혜가 나오지 않아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大腸과 小腸은 命門이 없으면 傳化하지 못하여 대소변이 막히고, 心은 命門이 없으면 神明이 혼란해져서 매사에 대응하지 못한다. 바로 君主가 賢明하지 못하면 十二官이 위태롭게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의 논술로부터 趙獻可는 또한 명문의 작용이 인체에서 가장 중요함을 더욱 강조하여 命門은 眞君眞主이고 十二經脈의 주인이라고 하였다.

淸代의 醫家인 陳士鐸・陳修園・林佩琴・張路玉・黃宮琇 등도 역시 命門은 眞火이고 命門의 위치는 兩腎의 사이에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陳士鐸은 ≪石室秘錄≫에서 命門은 先天의 火이다. 이 火는 형태가 없으며 水中에 머문다. 세상에는 有形의 火가 있어 水가 이를 억제하지만, 無形의 火는 水가 이를 생한다. 火를 水中에서 억제하는 것은 유형의 水이고, 火를 水中에서 생하는 것은 무형의 水이다. 무형의 火는 무형의 水에 의지하여 생하므로 이 무형의 火는 火에 저장되지 않고 오히려 水에 저장되는 것이다. 命門의 火는 陽火로서 하나의 陽이 兩陰의 사이에서 밝게 빛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明代의 孫一奎는 처음으로 兩腎 사이의 動氣說을 주장하였다. 그도 역시 兩腎의 중간에 命門이 있다고 여겼으나, 命門은 형질을 갖추고 있는 장기가 아니며 水도 아니고 火도 아닌 단지 일종의 元氣를 發動하는 氣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孫一奎는 命門은 결코 形質을 갖춘 臟器가 아니므로 經絡이 순행하지 않고 動脈도 역시 진찰할 수 없으며, 그것은 兩腎 사이에 있는 動氣의 소재에 불과하고 끊임없이 생동하는 造化의 중추일 따름이다. 아울러 兩腎 사이의 動氣는 비록 臟腑의 根本이고 生命의 根源이지만 火라고 볼 수 없으므로 水도 아니고 火도 아니며, 造化의 중심이자 陰陽의 뿌리라고 하였다.

그리고 命門의 형태적인 면에서 보면 有形과 無形의 論爭이 존재한다. ≪難經≫에서는 右腎을 命門으로 여겨 형태가 있다고 하였고, 張景岳은 命門을 子宮・精室로 보아 역시 형태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부위로 말하자면 秦越人은 右腎說을 주장하였고 虞摶과 張景岳 등은 兩腎 혹은 兩腎 사이에 존재한다는 설로 구분된다. 그러나 그들은 命門의 주요한 生理機能에 대해서는 原則的으로 엇갈림이 없고, 命門의 生理機能과 腎은 끊임없이 통한다는 인식에도 큰 차이가 없다. 역대 의가들의 命門의 生理機能에 관한 논술을 보면 命門과 腎의 生理機能은 일치한다. 腎과 命門은 모두 五臟의 근본으로 眞陰과 眞陽에 속하며, 인체 五臟六腑의 陰은 모두 腎陰의 滋養을 받고 五臟六腑의 陽은 모두 腎陽에 의해 溫煦된다. 그리고 張景岳은 腎陽은 ‘命門의 火’이고 腎陰은 ‘命門의 水’라고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腎陰과 腎陽은 곧 眞陰과 眞陽이며 元陰과 元陽이다. 그리고 張景岳은 腎陽은 ‘命門의 火’이고 腎陰은 ‘命門의 水’라고 분명히 밝혔다. 따라서 腎陰과 腎陽은 곧 眞陰과 眞陽이며 元陰과 元陽이다. 고대 醫家들이 命門이라고 한 것은 命門에는 神精이 머물고 元氣가 매여 있으며, 남자는 精이 저장되고 여자는 胞가 매여 있는 곳이라고 두 번씩이나 밝혔으니 어찌 허황된 소리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한 것과 같다. 그리고 養生道家들이 말하기를, 下丹田은 臍下三寸에 脊梁(척추마루)의 兩腎 사이에 부착되어 있으며, 左靑右白이고 上赤下黑이며 中央黃色으로 大海라고 부르며, 精血을 저장하므로 藏精之府라 부른다고 하였다. 이는 좀 抽象的이어서 玄學的인 면이 있지만 下丹田을 精血을 저장하는 곳이라고 하였으니 곧 命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대인의 냉철한 시각에서 좀 더 명확하게 밝혀 말한다면, 命門이란 實質的으로 解剖學的인 有形의 臟器가 아니고 至精至微하게 人身을 滋養하고 化生하는 機能으로 증빙하여 無形無迹의 機能을 추상적으로 命名한 것으로서 오로지 陰中之陰臟인 肝腎에 붙이어 깊고 은밀하게 潛藏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위에서 論及한 바와 같이 自古以來로 많은 諸家들이 命門의 기능을 해석하고 설명하면서 命門火 天火 龍雷之火 相火 龍火 陰火 등으로 甲論乙駁의 논쟁이 분분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命門에 精義를 다시 敷衍하면, 命門이란 곧 生命의 門이란 뜻이다. 특히 命門은 元陽 眞陽으로서 火를 운용하기 때문에 그의 機轉을 상징하여 命門火라고 지칭한다. 달리 相火라고도 하는데 이는 人身에서 心火가 君王之火라는 뜻에서 君火라고 부르는데 비하여 命門火는 亞火로서 相臣之火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어, 다시 이를 줄여서 相火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命門과 腎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로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腎은 水를 주관하고 命門은 火를 주관한다.
그러므로 腎水는 眞水・眞陰・元陰・元精・腎陰・眞氣・眞元・元氣이라고도 하며, 命門火는 先天之火・相火・眞火・眞陽・元陽・腎陽・生氣・陽氣라고도 하는데, 따라서 腎水와 相火는 陰陽의 관계로서 생명유지에 절대적인 물질과 기능으로서 상호 작용하는 生命의 根本이자 生化의 根源이다. 相火는 腎水를 따뜻하게 하고 脾胃와 膀胱을 데워 음식물을 傳化하며 津液을 施化한다. 病理的 문제로는 相火는 動的인 것을 주관하므로 相火가 지나치게 熾盛하면 淫慾을 충동하여 龍雷之火가 되어 陰精을 손상시키고 腎精을 涸竭시킨다.

張景岳은 말하기를 “≪內經≫에서 火義를 發明하면서 君・相・明・位 이 四字로써 節目으로 정하였는데 이 네 자는 각각 진실하니 이것은 실로 至道의 綱領이다. 대개 君道는 오직 神機이니 그 쓰임은 虛에 있고, 相道는 오직 힘에 있으며 그 쓰임은 實에 있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니 실로 明辨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君이 능히 神通할 수 있음은 神氣의 明決에 있고, 相이 能力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位育하는 힘에 있는 것이다. 君道의 明決이란 위에서 두루 살펴서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사물에 대하여 사리에 밝아 명철하게 英明한 결단을 잘 내림으로써 化育하는 元主가 되고, 相道의 位育함이란 곧 群臣의 位置와 역할을 의미하여, 아래에 位置하면서 神明의 명령을 받들어 모든 신체의 各部가 제자리에서 안정되게 化育할 수 있는 大業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 따라서 이것이 君과 相이 相成하는 大道로서 하늘이 있음에 땅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고, 君火가 있음에 相火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로써 古典에서 ‘君火動相火隨之’라고 말한 君相의 大義를 개괄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命門은 滋養之根이고 化生之源이다. 滋養之根이라함은 後天元氣를 관장하는 脾胃의 水穀傳化作用을 도와서 精微로운 津液을 전신에 灌濡하게 하는 것이고, 化生의 根源이란 先天元氣를 말하는데 作强之官으로서 陰陽이 絪縕翕合하여 化生之大德을 발휘하여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이니 바로 인간 생명유지의 본바탕으로서 중추적 機能을 擔當하는데, 이로써 인간의 榮衛가 俱全하게 되며 또한 인류가 영원히 존속할 수 있는 기틀이 된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定義하면 命門은 인간 생명의 源泉으로서 先天元氣인 腎을 鞏固히 하고, 아울러 後天元氣인 脾를 管掌하는 至貴至重한 橐籥인 것이다. 대개 君火와 相火사이의 生氣를 모두가 元氣라고 말하는데, 元氣는 오직 陽氣를 爲主하고 陽氣는 오직 火일 뿐이다.

그러나 人身은 相火만으로 생명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고, 서로 억제하면서 서로 의지함으로써 陰陽과 寒熱의 균형을 서로 조절하는 眞陰이 있어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相火란 無形之火요 先天之火로서 脾胃의 傳化機能을 조장하고 眞陽을 저장하여 人身의 生氣와 元氣가 바로 여기서 發揚되는 것이다. 眞陰이란 陰中之水이며 先天之水로서 腎에 저장된 선천의 腎精으로 眞陽에 상대되는 말인데, 인체의 생장과 발육의 가장 기본이 되며, 인간 본연의 생명유지에 원천적으로 필수적인 물질로서 달리 元精・元陰・腎陰・眞氣・眞水・腎水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張景岳은 命門의 統括하에 左右兩腎을 배속하고 左爲眞陰 右爲眞陽의 醫論을 확립하였는데 眞陰은 命門水이고 眞陽은 命門火이며 곧 相火인 것이다. 따라서 新方八陣에서 左腎水에는 左歸飮을 사용하고 右命門에는 右歸飮을 이용함으로써 元陰과 眞陽을 적절하게 調節할 수 있는 象徵的인 代表治方을 提示하여 學術的 意志를 나타냈다.

≪內經≫의 臟象論에서 말하기를 “五臟에도 모두 氣血이 있으니 그 綱領을 들어보면, 肺에서 氣가 나오고, 腎은 納氣하는 까닭으로 肺는 氣의 主가 되고 腎은 氣의 本이 되는 것이다. 血은 水穀의 精이니 근원이 길어 끊임없이 흘러나오지만, 실제로 脾에서 生化하고, 心에서 전체를 통괄하며, 肝에서 受藏하고, 肺에서 전신에 宣布하며, 腎에서 施泄하여 一身에 灌注하게 되는 것이다. 소위 氣는 불어내는 것(噓)을 主하고, 血은 濡養하는 것을 主함으로써 氣血은 사람 몸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고 말한 것을 보면, 五臟이 相扶相助하여 氣血이 生化하고 운행되지만 그 중에서 脾腎의 역할이 막중함을 이해할 수 있다.

景岳이 말하기를 “君相의 意義를 밝혀 말하면 君火는 心火이니 재론할 여지가 없지만 相火를 총괄하여 大體로 말하면 相火는 당연히 命門에 있으니, 초목의 뿌리는 아래에 있어 枝葉의 本이 되는 것을 일컬은 것이고, 職分의 지킴을 밝혀 말하면 臟腑에는 각기 君火와 相火가 있어 志意가 모두 形質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한 것”이라고 하였다. “五臟에 역시 각기 相火가 있으니 相火가 强하면 君도 强해지는데 이것이 相道의 關係이니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이 특히 이것의 이름을 相火라 命名하였으니 진실로 至重하게 여겼는데 후인들이 賊이라 지적하니, 왜 이렇게도 차이가 있단 말인가! 이것은 萬歲에 의문스러운 점이므로 내가 부득이하여 밝히는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李東垣이 相火는 下焦包絡之火로서 元氣之賊이라고 하는 것도 역시 깊은 뜻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情慾이란 항상 妄動하는 것이니, 妄動하면 모두 火를 일으키고 炎火가 熾盛하면 元氣를 손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元氣의 賊이라고 말하는 것이 역시 어찌 불가하다고 보느냐?”고 하는 질문에 景岳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진실로 邪氣와 正氣의 갈림길에 있으니, 가장 명확하게 밝혀야 마땅하다.”고 하면서 “대저 情慾이 妄動하는 것은 邪念이고 邪念의 火는 邪氣인데 반해, 君火와 相火는 正氣이니 正氣가 쌓이면 元氣가 되는 것이다. 또한 무릇 火가 사람을 상하게 하는 것을 賊이라고 말하는 것은 君相의 眞火가 아니고, 內部에 있든지 外部에 있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邪火인 것이다. 邪火를 가히 賊이라고 말 할 수 있으나, 相火를 賊이라고 말하는 것은 불가한 것”이라고 하였다.

이때 妄動하는 邪氣를 龍火 혹은 龍雷之火라고 하는데, 相火가 爲物所感으로 사람의 情慾이 妄動할 때는 마치 천둥번개에 우레가 치는 가운데 龍이 승천하듯이 그 氣勢가 빠르면서도 맹렬하므로 醫家들은 肝腎 등에 저장된 相火를 龍雷之火에 비유하였다. 그리고 虞摶의 ≪醫學正傳≫에서는 相火는 일정한 틀이 없어 위로는 肝・膽・胞絡 사이에 있어 發動하면 龍火가 하늘을 날고 우레가 치는 것 같으며, 아래로는 兩腎의 내부에 머물러있어 發動하면 龍火가 湖海에서 춤추고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것은 龍火가 한 번 발동하게 되면 그 강렬한 기세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리고 張景岳은 위에서 君火가 발동하면 아래에 있는 相火가 응하게 되는데, 相火는 水中의 火로서 고요히 그 자리를 지키면 바로 陽氣가 되지만 기세가 熾盛하여 절제하지 못하면 곧 龍火가 되어 涸澤燎原으로 생명의 眞元인 腎精을 枯竭시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다시 정리하여 말하면 相火는 바로 龍火가 아니고 眞火이며 元氣이다. 相火가 妄動했을 때 이를 龍雷之火 혹은 龍火라고 하는데 이는 단지 邪火이고 邪氣일 뿐이다.

만약 陰盛格陽이 되면 體內에서 陰寒이 熾盛하여 陽氣를 외부에서 가로막음으로 인해 내부에서는 眞寒이 나타나고 외부에서는 假熱이 나타나는데, 이는 寒이 極에 달하여 內部에서는 陰이 熾盛하나 肌表에서는 浮熱이 나타나고 口渴 煩躁 등의 증상을 나타내며, 脈은 洪大하지만 重按하면 무력하다. 이런 경우에 劉河間 朱丹溪 등 醫家들은 이를 龍雷之火라 하여 苦寒之劑로써 淸火해야 한다고 주장한데 반하여, 景岳은 “그 虛함의 원인이 진실로 眞陰에 있을 때는 補陰益氣煎이나 左歸飮으로 壯水制火하면 精化爲氣가 될 수 있지만, 假火의 원인은 실제로 命門火衰에 있으니 陰盛格陽으로 眞寒假熱의 증상을 보이면 右歸飮이나 八味元 等屬으로써 引火歸原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실로 超人的인 慧眼의 소유자만이 밝혀낼 수 있는 前人未發의 탁견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치법은 鼠目寸光의 庸流들로서는 감히 想像조차 할 수 없고, 生死岐路의 困篤한 환자를 的確하게 起死回生시킬 수 있는 賢達한 精醫들만이 발휘할 수 있는 保命玄機의 奇法일 뿐이다. 따라서 治火之法을 요약하여 정리하면 實火는 苦寒之劑로 淸火함이 마땅하지만, 虛火나 假火는 甘溫之劑로 溫養하거나 益火之劑로 引火歸元하는 것이 바른 治法이라는 것이다.

다시 한 번 敷演하여 비유하면, 인간 생명의 本源인 命門之火에 金元시대의 醫家들에 의해 龍雷之火라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씌움으로써 수백 년 동안 承襲된 醫學的인 積陋를 張景岳이 비로소 새롭게 정리하여 쌓인 원한을 풀어 주었다고 볼 수 있으니, 곧 相火는 眞陰과 더불어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지중한 橐籥이라는 醫學的 理論을 定立하게 된 것이다. 景岳이 말하기를 “命門은 精血之海가 되고 脾胃는 水穀之海가 되는데, 다 같이 五臟六腑의 根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命門은 元氣의 根柢가 되고 水火의 宅이니, 五臟의 陰氣는 이것이 아니면 滋養할 수가 없고 五臟의 陽氣는 이것이 아니면 發揚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脾胃는 中州의 土로서 火가 아니면 능히 調暢할 수 없다. 그러나 春氣는 반드시 下部에서 시작되니 三陽이 땅을 따라서 일어난 후에 萬物이 化生을 얻게 되는데, 人身의 下部에 자리 잡은 命門의 陽氣가 어찌 바로 脾胃의 母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命門에는 火候가 있는데, 즉 元陽이라 하며 바로 物質을 生産하는 火(原動力)인 것이다. 그러나 稟賦의 강약이 있으니 元陽에는 盛衰가 있으며, 陰陽에는 勝負가 있으니 疾病을 治療하는 데는 輕微함과 尤甚함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火候를 마땅히 판별해야 하는 까닭인 것이다. 이로 인해 大綱을 말하면 一陽의 元氣는 반드시 아래에서부터 올라가서 三焦에 널리 퍼지게 되어 각기 徵候가 나타나는 것이다. 대개 下焦의 徵候는 토양과 같아서 化生의 根本이 되고, 中焦의 徵候는 부엌의 밥솥과 같아서 水穀의 화로가 되는 것이며, 上焦의 徵候는 太虛와 같으니 神明의 집이 되는 것이다.”

“下焦가 토양과 같다는 것은, 토양에는 肥沃함과 瘠薄함이 있어 생산이 각기 다르고 山河에도 肥厚함과 瘠薄함이 있어 각기 모아서 간직함이 다른데, 聚散을 고르게 조종하는 것은 모두가 陽氣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에 있어서는 一分을 얻게 되면 바로 一分만큼 소용이 있고, 一分을 잃으면 一分만큼 虧損함이 있게 되니, 무릇 壽夭・生育과 勇怯・精血 및 治病의 기틀은 이 元陽의 충족함과 부족함으로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고 消長・盈縮의 主가 되는 것이니, 이것이 下焦 火候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中焦가 부엌의 밥솥과 같다고 하는 것은, 무릇 飮食에 의해 滋養되는 根本은 水穀에 있으니 음식을 잘 먹으면 身體가 强壯해 지고 음식을 잘 먹지 못하면 身體가 衰弱하게 된다. 바로 胃中 陽氣는 뜨겁기를 가마솥과 같으니, 가령 그것이 그렇지 않다면 어찌하여 아침에 먹은 음식이 낮이 되면 바로 消化되고 낮에 먹은 음식이 저녁나절이 되면 바로 소화되는지는 밥솥이 消化되는 속도와 같음에 불과한 것이다.”

“胃氣가 病들게 되면 점차적으로 痞와 脹이 생기고 혹은 咽隔하고 혹은 嘔吐하며, 혹 먹은 음식이 절반도 소화시키지 못하게 되고 혹은 膨聚하여 不消하며, 혹은 呑酸 噯腐하고 食氣가 변하지 않거나 혹은 腹疼 肚痛하고 종일토록 배가 고프지 않으며, 혹은 淸濁이 不分하고 혹은 完穀이 소화되지 않게 된다. 대개 소화가 되면 運行되지 않는 것이 없고, 소화가 되지 않으면 留滯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運行이 되면 氣가 되고 血이 되는 것이지만, 留滯하면 積이 되고 痰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까닭은 胃氣가 健實하지 못함이라고 아니 할 수 있겠는가? 胃氣가 健實하지 못함은 火候의 무력함이 아니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근래 痞, 脹, 呑酸, 噯腐 等의 病을 치료하는 것을 보면, 熱인지 熱이 아닌지를 막론하고 걸핏하면 胃火라고 하여 苦寒한 藥物로써 치료하였으니 조금 남아 있는 불씨의 幾微가 어찌 견디어낼 수 있기를 바라겠는가? 이것이 中焦 火候에 대한 설명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런 理致에 밝지 않으면서 흔히 虛陽을 實熱로 인식하여 이러한 火를 溫養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만 寒凉之劑로써 火를 消滅하는 것만 알고 있으니, 어찌 生意가 남아 있어서 속히 죽지 않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이것은 실로 醫家 第一의 活人大義이니, 이미 이 道를 따르려 한다면 먼저 이 理致에 밝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精은 氣가 없으면 行하지 못하고 氣는 水가 없으면 生化하지 못하니, 이것은 그 중에 또한 나눌 수 있는 것과 나눌 수 없는 妙用이 있는 것인데, 역시 智慧로운 사람의 神같은 깨달음에 있는 것이지, 紙筆로써 다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릇 火를 治함에 있어서 實熱의 火는 寒으로써 火를 이기게 해야 하고 水로써 火를 꺾어야 하는 것이니 소위 熱한 것은 寒하게 해야 마땅하지만, 虛熱의 火는 寒으로써 火를 이기게 하면 불가한 것이니 所謂 勞損한 것은 溫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하면, 대개 虛火의 원인은 水가 없기 때문이니 단지 水를 補하고 火를 按配하면 陰陽이 平穩함을 얻어 病이 저절로 낫게 되는 것이다. 만약 火를 除去해서 水를 恢復하고자 한다면 이미 虧損한 水는 반드시 回復되지 않고 火와 함께 除去될 터이니 어찌 陰陽이 俱敗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또한 苦寒한 藥物에는 절대로 升騰하는 生氣가 없으니, 苦寒한 藥物로써 虛를 補하는 이치는 없다.”

“그러므로 命門에서 邪火가 偏勝하여 眞陰이 부족하면 命門陰虛가 되는데, 이를 치료할 때는 반드시 左歸飮 等屬의 甘平之劑로써 오로지 眞陰을 塡補하였는데 이렇게 하면 비록 바로 빠른 효과가 없어도 스스로 害가 되지는 않으니, 그런 후에 乘함을 살펴서 잠시 한번 淸解하거나 점차적으로 溫潤之劑를 더해 주면 반드시 生氣가 점점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대개 脾가 健實하면 熱이 물러가게 되고, 肺가 점점 潤해져 咳嗽가 점차 편안해지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점차 恢復하려는 좋은 징조로서 이렇게 하여 살아난 사람이 많았다. 만약 단지 知母 黃檗이 補陰한다는 것만 알면 腎을 더욱 敗亡하게 되어, 泄瀉를 하거나 飮食減少 현상이 생겨서 반드시 곧 危殆하게 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後學들이 분명히 알아야 것은 景岳은 命門을 至重하게 여겨 右歸飮이나 胃關煎 등을 創方하는 등 命門火에 대하여 심혈을 기울인 것은 틀림없다. 이에 대하여 앞에서 좀 부족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再論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누차 論及한바 있다.

그러나 ≪景岳全書≫가 출판된 이후 擧世醫家들이 景岳의 益火之說에 대한 選好度가 너무 高潮됨으로써 眞陰을 소중하게 여긴 景岳의 醫學思想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아 遺憾이다. 景岳은 절대로 益火補陽에만 置重하는 偏向된 학자가 아니었다. 景岳은 全書에서 眞陰에 대하여 무려 141회를 언급할 정도로 眞陰을 소중히 여겼다. 왜냐하면 人身에서 생명유지의 要諦는 陰과 陽이 서로 견제하여 균형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즉 相火와 眞陰이 互相牽制하고 互相依存하여 不偏不倚함으로써 調和와 均衡을 이루어 陰陽이 俱全할 수 있어야 氣血이 俱旺하여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 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張景岳은 甘溫之劑는 능히 大熱을 除去시킬 수 있다는 藥理的 所信으로 大劑 熟地黃으로 爲君하여 眞陰을 鞏固케하는 左歸飮을 創製하였으며, 역시 純甘溫潤하는 熟地黃을 君劑로 按配하여 眞陰不足으로 惹起되는 治方으로 理陰煎을 創方하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理陰煎을 試用해본 醫家라면, 景岳 자신이 “진실로 神方”이란 격찬을 한 것이 과연 自畵自讚으로 妄衒己長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補陽하는 處方이든 補陰하는 處方이든 간에 益火助陽에만 偏向되게 香燥之品에 치중하지 않고 한결같이 純甘溫潤하는 熟地黃을 大劑로 爲君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張仲景의 八味元을 創製한 趣意를 繼承하여 發展시킨 要諦로서 張景岳 醫學思想의 核心이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張熟地’라는 것을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醫書의 刪繁撮要에 達人인 朝鮮後期의 名醫 黃度淵도 당시 醫藥界를 風靡한 益火之說에만 心醉되어 그의 著書 ≪方藥合編≫에서 古今名方 중에서 ≪百一選方≫과 같이 嚴選하여 收載한 上統 123方, 中統 181方, 下統 163方 등 都合 467方 중에서 張景岳이 창방한 33方을 登載하면서 眞陰을 塡補할 수 있는 萬古名方인 左歸飮의 收載를 놓친 것은 그의 明哲함 중에서도 千慮一失이라는 아쉬움이 후학들의 胸臆에서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상으로써 命門의 統攝에 의해 관장되고 收持되는 相火와 眞陰은 陰陽의 본바탕으로서 人身에서 生命의 橐籥이요 源泉이며, 오로지 爲物所感으로 인해 情慾의 불길이 熾盛하여 妄動한 龍雷之火가 元氣之賊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름지기 지중한 남의 疾病을 執證施治하면서 應病與藥이 精微로우려면 命門의 機轉에 대해 깊이 會通해야 虛虛實實하거나 北轅適楚하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戊戌(2018) 菊秋 杏林埜人 權三壽
東醫寶鑑의 오류
醫籍들을 계고하면 越鞠丸의 참뜻을 알 수 있다!
愚老가 ≪東醫寶鑑≫의 전권을 두루 통람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때그때 필요한 부분을 정독하여 본 결과 애석하게도 동방 최고의 종합의학서적인 ≪東醫寶鑑≫에는 아래와 같은 오류가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향후 뜻있는 후배들에 의해 是是非非를 명확하게 밝혀지고 새롭게 다듬어져서 보다 정확하게하고 나아가 완전무결한 精本을 후학들에게 전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아래와 같이 간략하게 적시한다.  

李時珍은 ≪本草綱目≫(1578) 芎藭의 釋名條에서 “朱丹溪가 六鬱證을 치료하는 越鞠丸 중에 越桃와 鞠窮을 사용하였으므로 越鞠丸이라 命名하였다”고 했는데, 按證하여 보니 越桃는 梔子의 異名이고 鞠窮은 川芎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와 같이 李時珍은 朱丹溪와 2백년이라는 긴 시공이 있었음에도, 越鞠丸이라고 이름 지은 朱丹溪의 심중을 꿰뚫어본 것으로 볼 때 神같이 通博하였으니 실로 群鷄一鶴이라 하겠다. 또 李梴은 ≪醫學入門≫의 釋方篇 越鞠丸條에서 “鞠者鬱也。 藥能發越其鬱結之氣。 方多誤爲越麴。” 이라고 하였으니, 古人들이 越鞠丸이라 명명한 깊은 趣意를 짐작할 수 있다
(發越 : 여기서는 널리 퍼지고 흩어져서 없어지다)

≪醫學正傳≫(1515) : 越鞠丸 아래 註에서 “越音戈 細麪也。 一名 芎朮丸。”이라고 하였다.
≪東醫寶鑑≫(1613) : 䴰麴丸 아래 註에서 “䴰音戈 細麪也”라고 하였으나, 䴰(익)은 䴬(익)의 俗字이다.
東醫寶鑑은 䴰麴丸의 出典을 丹溪 朱震亨(1280~1358)이라고 하였지만, 丹溪心法(1450)은 물론 醫學正傳(1515) 明醫雜著(1549) 古今醫統大全(1556) 醫學綱目(1565) 古今醫鑑(1576) 本草綱目(1578) 醫林撮要(1579) 赤水玄珠(1584) 萬病回春(1615) 證治準繩(1620) 醫學入門(1636) 醫燈續焰(1652) 醫方集解(1682) 張氏醫通(1695) 景岳全書(1700) 馮氏錦囊(1722) 醫宗金鑑(1742) 成方切用(1761) 沈氏尊生書(1773) 中醫大辭典(1926) 中國醫學大辭典(1958) 등 22종의 의학서적 모두가 처방의 구성내용과 치법 용법이 같을 뿐만 아니라 처방명칭도 모두 越鞠丸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유독 ≪東醫寶鑑≫에서 어떤 근거에 의거하여 䴰麴丸이라 변경했는지 알 수 없으며, 또한 李時珍과 李梴의 越鞠丸 처방명칭 해설과는 상이한 감이 있다. 그리고 許浚은 虞摶이 ≪醫學正傳≫에서 “越音戈 細麪也”라고 한 것을 모방하여 “䴰音戈 細麪也”라고 하였는데, 이 부분은 양자 모두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아 蛇足같은 내용으로 보인다. 그리고 북한판 ≪東醫寶鑑≫과 ≪東醫寶鑑≫의 䴰麴丸을 轉載한 ≪濟衆新編(1799)≫에서는 논란이 야기될 수 있는 이 부분을 아예 기록하지 않았다.  

그런데 越鞠丸이 䴰麴丸으로 변경된 일말의 연유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양평군 허준은 ≪東醫寶鑑≫을 편집하면서 ≪醫學入門≫에 근거하여 집필된 부분이 가장 많아 보인다. 앞에서 이미 거론한 바와 같이 ≪醫學入門≫을 저술한 李梴은 釋方篇에서는 “처방을 越麴이라 쓰는 오류가 파다하다”고 언급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은 ≪醫學入門≫ 각론에서 越麯丸(6회)이라고 기록한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양평군은 李時珍이 ≪本草綱目≫ 芎藭條에서 越鞠丸에 대해 명확하게 昭明하였음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약 이 내용을 인지했더라면 절대로 越鞠丸의 명칭을 변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醫學入門≫ 각론에만 의존하다보니 越麯을 䴰麴으로 변경한 게 아닌가? 思料된다. 그러나 이러한 愚老의 가상은 어디까지나 견강부회하게 억측한 내용에 불과할 뿐이고, 盲目寸光에 管測一斑인 愚老가 더 이상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燕雀安知鴻鵠志哉일 뿐이다.  바라건대 有志竟成이라 언젠가 후일 현달한 후배가 나와서 盡心精進하여 이러한 의문점을 모든 학자들이 수긍할 수 있도록 명확하게 밝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東醫寶鑑≫ 用藥條에서 “用藥에 無據하면 反爲氣賊(靈樞)”이라 하였는데, ≪黃帝內經≫ 全書를 通覽해도 이런 말은 없다. 다만 ≪素問・離合眞邪論≫에서 “用鍼에 無義하면 反爲氣賊”이라는 말이 있다. 이런 ≪離合眞邪論≫내용을 응용하여 “用藥에 無據하면 反爲氣賊”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출전 근거를 ≪靈樞≫라 하였으니 이는 근본적으로 고증이 부족한 내용이 되고 말았다.  

또한 ≪東醫寶鑑≫ 健忘條에서 “健忘者 陡然而忘其事”라는 구절이 있는데, 10여 판본을 조사해본 결과 十中八九는 “陟然而忘其事”라고 되어 있다. 설마한들 초간본에는 바르게 기록되었겠지 하는 기대를 했는데, 확인한 결과 초간본부터 ‘陟然’으로 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미상불 이는 민족적 최고학자인 허준이 문맥에 맞게 ‘陡然’이라고 기록했겠지만 筆寫者가 판각에 轉寫하면서 ‘陡’와 ‘陟’이 글자가 비슷하여 오류가 발생했으며, 속간하는 분들이 이를 詳考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답습하여 傳寫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옛날 목판인쇄나 석판인쇄에서는 저자가 아무리 원고를 바르게 작성한다 해도 어문능력이 좀 부족한 筆生을 만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어서 좀 발전된 활판인쇄에서도 植字工의 실수가 역시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리고 虛詞인 ‘陡然’은 遽然 決然 霍然 蹶然 劇然 頓然 突然 斗然 驀然 猛然 勃然 瞥然 乍然 倏然 恂然 俄然 奄然 兀然 卒然 倅然 猝然 輒然 驟然 忽然 豁然 恍然 劃然 翕然 등의 同義語로서 문득. 갑자기. 돌연. 별안간. 등의 뜻이 있는데, 남산당 국역판에서는 ‘陡然’으로 보고 해석했는지 ‘陟然’으로 보고 해석했는지는 몰라도 이 어휘를 ‘멍청하게’라고  해석하여 두리뭉실하게 문장을 엮었으니 추리를 잘하는 유능한 소설가의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판 ≪東醫寶鑑≫에는 원문은 없으나 ‘갑자기’라고 바르게 해석되어 있다. ☞≪東醫驗方續纂≫ 18쪽 참조.  

마지막으로 湯液篇에서 머위의 본초명을 ‘白菜’라 했는데, 머위의 본초명은 ‘蜂頭菜’가 正名이다. 白菜는 菘菜의 다른 이름이다.
東醫寶鑑의 出版史
1. 1613年(光海君 5年 癸丑 11月) 內醫院版 訓練都監活字本 開刊
2. 16□□年(00 00 00) 完營 木版本 開刊
3. 1659年(孝宗 十年 己亥) 嶺營 木版本 開刊
4. 1724年(日本享保 9年 甲辰) 日本 京都版 刊行
5. 1754年(英祖 30年 甲戌) 嶺營版 改刊
6. 1763年(英祖 39年 癸未) 內醫院 銅活字版 刊行
7. 1763年(淸朝 乾隆 28年 癸未) 淸國 乾隆 開刊版
8. 1766年(淸朝 乾隆 31年 丙戌) 淸國 乾隆 改刊版
9. 1796年(淸朝 嘉慶元年 丙辰) 淸國 嘉慶版 刊行
10. 1799年 (日本 寬政 11年 己未) 日本 大阪版 刊行
11. 1814年(純祖 14年 甲戌) 完營 重刊版 刊行
12. 1890年(光緖 16年 庚寅 正月) 中國 上海 校經山房 石印版 京都版(1724) 復刊
13. 1890年(光緖 16年 庚寅) 淸國 上海 千頃堂書局 刊行 및 日本寬政版 復刊
14. 1917년((民國 06年 00) 中國 上海 廣益書局 石印版 刊行 ≪增圖東醫寶鑑≫
15. 1936年(昭和 11年 8月 1日) 京城 博文書館 石版本 刊行
16. 1959年(民國 48年 己亥) 臺灣 影印本 東方書店版 1962年까지 三版.
17. 1962年(壬寅) 6月 10日 許珉 國譯 國際出版社版 上.中 刊行
18. 1965年(己酉) 5月 1日 許珉 國譯 東洋綜合版 下 刊行
19. 1966年(民國 55年 00) 臺灣 國豊出版社 刊行 1980年 再版
20. 1966年(丙午) 8月 1日 豊年社 原文附 國譯版 刊行
21. 1969年(己酉) 8月 25日 南山堂 原文附國譯增補版 刊行
醫學入門의 越鞠丸과 越麯丸
위 ≪東醫寶鑑≫ 오류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李梴은 ≪醫學入門≫ 釋名篇 越鞠丸條에서 “越鞠丸의 약성은 능히 鬱結한 기운을 흩어지게 하는 효력이 있다. 그러나 처방을 越麴丸이라고 쓰는 오류가 파다하다”고 언급하면서 同途諸家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은 ≪醫學入門≫ 각론에서 越麯丸(6회)이라고 기록된 모순점이 있으니, 博覽群書하여 현달하고 고명한 대학자 李梴이 千慮一失을 한 것에다. 아래에 그 내용들을 1,266쪽의 pdf파일 중에서 발췌하여 열거한다.
醫學入門 PDF로 越鞠丸(1)越麯丸(6) 찾기
PDF# 01-56P 越鞠丸→ 우우상(오른쪽 오른편 상단)
PDF# 12-21P 越麯丸→ 우우상(오른쪽 오른편 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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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門寶鑑의 오류
위에서 揭示한 ≪醫學入門≫의 오류처럼 朱丹溪의 越鞠丸이 수재된 醫籍들을 考覽하다가 다른 醫籍에서 뜻하지 않는 오류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 綱擧目張이라고 그물을 칠 때 벼리를 들어 올리면 모든 그물코가 펴지는데서 유래한 말과 같이, 중요한 하나의 실마리를 잡으면 그와 연관된 중요한 자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따라서 ≪醫學入門≫에 이어 ≪醫門寶鑑≫에서도 극히 부분적으로 발견한 내용이지만, 그냥 간과할 수 없는 오류가 있어 간략하게 기록하는데, 이는 ≪東醫寶鑑≫에서의 陡然의 오류와 같이 周命新같은 대학자가 절대로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겠지만 미상불 筆寫者의 오류로 보이는데, 후학들이 이를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거금 3백년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것이다. 삼가 모든 醫籍들이 바르게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그 내용을 아래와 같이 게재한다.  

≪醫門寶鑑≫ 鬱證條 마지막에
“脫營者 先順後逆 思慮鬱結而成 飮食無味 神倦肌瘦 或酒酒然時驚....”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酒酒然時驚’은 ≪黃帝內經 素問 疏五過論≫에서 저자가 인용한 말인데   洒洒然時驚’의 오류이다. ‘洒洒然時驚이란 말은 ≪黃帝內經≫의 난삽한 고대 술어로서 嘗貴後賤하여 脫營이 되었거나 嘗富後貧하여 失精이 되면 “찬물을 뒤집어썼거나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추워서 오싹 떨면서 때로는 놀라기를 잘 한다”는 뜻이다. 
黃帝內經의 瑕疵
마지막으로 동양의학 최고의 原典인 ≪黃帝內經≫의 원문에도 문제점이 있는 부분도 있다. 즉 ≪素問 第二十四血氣形志篇≫에는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百藥”이라고   하였으나, 이어서 ≪靈樞 第七十八九鍼論≫에서는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甘藥”이라 하였으니 상호 모순되는 내용인데, 다음 百犬吠聲篇에 상론되어 있다.

 
結論   우리 격언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愚老가 이제 東洋醫籍에서 오류된 부분을 약간 거론하였다고 해서 결코 그 절반을 하였노라고 지나치게 妄衒己長하면서   자화자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다만 愚瞽가 天覆地載의 은혜로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二十星霜을 ≪景岳全書≫ 교정 작업에 몰입하고 나니 벌써 望九에 二星을 보탬으로써   桑楡景迫으로 심신이 쇠잔하고 안력도 부실하여 더 이상 博覽群書하기에는 세상만물의 절대적인 섭리따라 연력의 한계를 실감하며 隔靴搔癢일 따름이다. 그래서 진실로   후진들에게 부탁하건대 그 나머지는 후일에 高明賢士들이 속출되어 愚公移山으로 노력하면 同途諸家들이 함께 갈망하는 원대한 소망을 어느 날엔가 반드시 이루리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모든 醫籍들의 문장이 글자 한 자 한 자의 뜻이 명확하고 그 쓰임새가 분명하게 되어 講讀者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정리되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2022년 壬寅 臘月 杏林埜人
百犬吠聲
세상 사람들 중에는 어떤 사안에 대하여 자기 자신의 주견이 없으므로 무슨 내용인지 모르면서 남이 하는 대로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를 비유하는 말 가운데는 아래와 같이 표현하는 말이 자못 다양하다.

瞽馬聞鈴(고마문령)

‘눈먼 망아지 워낭소리만 듣고 따라간다.’ 즉 눈이 먼 망아지는 어미말의 목에서 들여오는 워낭소리만 듣고 그 방향으로 쫓아간다는 말이다. 이것은 곧 어떤 사안이나 이론 등이 옳은 것인지 그른 것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자기의 주견이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맹목적(盲目的)으로 따라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一犬吠形 百犬吠聲

줄여서 百犬吠聲 또는 群犬吠聲이라고도 하는데, 한 마리 개가 어떤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수많은 개가 그 소리를 따라 짖는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퍼뜨리면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사실처럼 떠들어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醜婦效顰(추부효빈) 效顰(효빈)

중국 상고시대 4大美人 중의 한 사람인 월나라의 서시(西施)가 속병이 불쾌(不快)하여 얼굴을 찡그렸더니, 어떤 추녀(醜女)가 그걸 보고 미인(美人)은 얼굴을 찡그린다고 여겨 자기도 얼굴을 찡그렸다는 옛일에서 전해온 말인데 줄여서 效顰이라고도 한다.

西施傳記 : 나무꾼의 딸로 저라산(苧羅山) 자락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자세한 성장배경은 알려진 것이 없다. 평범한 집안에서 출생하였지만 뛰어난 미모를 타고났기에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연정을 품었다고 전한다. 그녀가 살았던 지방에서 절세의 미녀로 소문이 나 같은 마을에 사는 여자들은 무엇이든 서시의 흉내를 내면 아름답게 보일 것이라 생각했고 지병으로 앓던 심장병의 통증으로 찡그리는 서시의 얼굴까지 흉내를 냈다고 한다. 눈살을 찌푸린다는 의미의 서시효빈(西施效嚬), 서시빈목(西施嚬目) 등의 말이 있고, 西施가 가슴앓이를 한다는 의미의 서시봉심(西施奉心)이라는 말도 이러한 정황에서 유래되었다. 모두 본질을 망각하고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한다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吳)나라와 싸움에서 패망한 월왕(越王) 구천(勾踐)의 충신인 범려(范蠡)가 西施를 데려다가, 호색가인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바치고, 西施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부차를 마침내 멸망시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미인 西施는 오나라가 멸망하자 부차에 대한 죄책감으로 강에 빠져 자살했다고도 하며, 자신을 요부로 훈련시킨 범려와 함께 제나라로 가 그곳에서 장사를 통해 큰 재물을 모았다고도 전해진다.

위에서 언급한 瞽馬聞鈴 百犬吠聲 醜婦效顰 등의 말은 모두 사안의 본질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기의 주견 없이 맹목적으로 남을 따라 언행을 일삼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춘추시대 孔子는 ≪春秋大義≫에서 “不義를 보고 傍觀하는 것은 惡의 편”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런데 잘못된 醫學이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면 사람의 인명을 손상시키고, 그릇된 정치 사회의 흐름은 국가안위를 위태롭게 하고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한다.

자고로 편작과 화타는 죽임을 당할지언정 醫學이론을 바로 잡으려 하였고, 초나라 굴원과 송나라 악비 장군은 정치적 소신과 국방정책에서 자기 목숨을 버려가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지난날 이 나라 槿域江山의 참다운 선비들 가운데는 지조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圃隱 鄭夢周와 사육신 같은 충신들도 있었다. 이와 같이 賢達한 醫家와 참다운 정치가 장군 등은 절대로 瞽馬聞鈴이나 群犬吠聲을 하지 않았다. 이에 자고이래로 사회 각 분야에서 세상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발생한 瞽馬聞鈴들은 한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 주로 한의약 분야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몇 가지 일들을 예를 들어서 약술해 보기로 한다.

특히 漢醫學의 발전과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원래 한의학은 상고시대 ≪黃帝內經≫에서 기초이론이 정립되었다. 그리고 後漢시대의 張仲景이 ≪金匱要略≫과 ≪傷寒論≫을 저술하면서 의학사상 처음으로 2종이상의 藥材를 배합하여 하나의 처방을 완성하여 治病에 활용하였는데 이론이 整然하고 그 결과가 無不奏效하였으니 醫學發展에 기여한 공로가 다대하였다.

그러나 金元시대에 이르러 劉河間은 諸病은 皆屬於火라 하여 瀉火論을 주장하였고, 張子和는 劉河間의 學術思想을 계승하여 寒凉藥을 偏用하였으며 發汗・涌吐・攻下에도 두루 능하였으나 특히 攻下에 치우쳤으니 愈攻愈虛라는 醫學正論에 맹목이었으며, 朱丹溪는 一水不勝二火之說 즉 腎中一水가 君相二火를 이길 수 없으며, 陽常有餘 陰常不足이라면서 苦寒한 약으로써 補陰論을 주장했는가 하면, 後世方派 중에서 易老 張潔古의 溫補脾胃하는 학풍을 承襲하여 補中益氣湯과 半夏白朮天麻湯 등 불후의 명방들을 창방한 李東垣 조차도 당시의 抑陽助陰하는 醫學的 思潮에 風靡되어 그가 저술한 ≪脾胃論≫ 말미 飮食勞倦所傷始爲熱中論에서 “相火는 下焦包絡之火로서 元氣之賊”이라 하였으니 실로 群犬吠聲이 되고 말았다. 升陽益氣에 겸하여 溫補脾胃하는 많은 처방들을 창방함으로써 유구한 의학사를 통해 현달한 李東垣이 千慮一失을 한 것이다.

대저 命門火 즉 相火는 진실로 元氣이고 眞氣이고 生氣일 뿐인데, 이를 오히려 龍雷之火로 잘못 인식한 나머지 抑陽助陰하는 한의학적 思潮를 瞽馬聞鈴으로 모두가 묵묵히 承襲한지 천년에 가까웠으니 脾胃가 虛寒한 사람들이 知母 黃栢 등속을 補陰한다고 多服 長服하고 夭折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며, 벙어리가 황련을 먹고 하소연 할 수 없게 된 자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대저 知母 黃檗은 단지 降火하는데 그칠 뿐인데 어찌하여 補陰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知栢을 제멋대로 투여하여 生氣를 크게 손상함으로써 陰은 더욱 쇠망하게 되었다. 이로써 세간에는 護疾忌醫(호질기의)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에 明나라 말기에 張景岳이 비로소 ≪景岳全書≫ 64권을 저술하여 이런 의학적 積弊를 바로잡게 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相火는 生氣・眞氣・元氣・正氣・眞元・眞陽으로서 생명의 원천이라고 주장하면서 益火溫補之劑로써 遷延歲月(천연세월)하던 痼疾宿患(고질숙환)을 起死回生시켜 인간 건강을 온전케 함으로써 延年益壽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眞陰을 配慮하며 以滋化源하면서 相火를 至重하게 여겨, 均衡과 調和로서 陰陽을 俱全하게 하는 것이 진실로 인간이 保生化生할 수 있는 機轉이라는 것을 醫學史上 처음으로 명확하게 闡明한 것이다. 이로써 의학사상 4천년 만에 神醫요 聖醫가 탄생하여 垂惠無窮(수혜무궁)하게 되었다.

그리고 ≪黃帝內經•靈樞 第十八•營衛生會篇≫에 “營衛者精氣也 血者神氣也 故血之與氣 異名同類焉。 故奪血者無汗 奪汗者無血 故人生有兩死而無兩生”이라는 내용이 있다. 모두의 “奪血者無汗 奪汗者無血”라는 뜻은 ≪明醫雜著≫를 撰한 王節齋가 “津液者血之餘”라고 하였으니 일신의 津液인 汗은 血과 同類이며, ≪五臟生成篇≫에서 “肝受血而能視 足受血而能步 掌受血而能握 指受血而能攝”이라 하였으니, 血은 汗과 더불어 일신을 운용하는 원천적인 동력이기 때문에 반드시 아껴야 하며 지나치게 소비되면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어서 “有兩死而無兩生”이라는 구절을 唐朝의 王燾가 ≪外臺秘要・752≫에서 “一死而無載生”으로 校訂하였는데, 오늘날 ≪黃帝內經≫의 번역문들을 考覽하면 ‘載’는 ‘再’와 통용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一死而無再生”로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 도대체 ≪黃帝內經≫이 어떤 책인데 후세인들이 어찌 감히 함부로 이와 같이 修訂에서 풀이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世間 학자들이 이를 맹목적으로 沿襲成風하고 黙黙承襲함으로써 百犬吠聲하기를 무려 1300년이나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愚老는 인생 후반을 醫學에 沈潛하면서 이런 난해한 문장을 대할 때마다 深思熟考하여 해당 구절에서 글자 한 자 한 자의 쓰임새를 면밀하게 詳考하고 문장 전체의 흐름을 감안하여 풀이하는데 주력하였다.그래서 이 부분은 원문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설령 두 번 죽을 수 있다 해도 두 번 태어날 사람은 없다”라고 해석하였다. 왜냐하면 ‘有’는 虛字로서 “ 설령 .....할지라도”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근래 우리나라 학계에서 王燾의 校訂을 못마땅하다고 여겨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여 “有兩死而無兩生” 앞의 前文을 참고하여 “사람에게 두 가지가 죽는 경우는 있지만, 두 가지가 살아나는 경우는 없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 내용도 좀 疏遠한 느낌이 있으나 醜婦效顰을 면하려는 노력으로서 높이 평가할 만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본다.

다음은 내용 君相兩火圖 解說에서 이미 언급한 내용이지만, ≪黃帝內經≫의 번역 문제를 재론하여 ≪黃帝內經≫을 종합적으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한다. ≪黃帝內經 天元紀大論≫에서 “君火以明 相火以位”라고 하였는데, 이를 번역한 모든 출판물들이 “君火는 상부에 있어 밝음에 있고 相火는 아래에 위치함에 있다”라고 풀이 하였으나, 본인이 문맥을 詳考해본 결과 “君火以明決 相火以位育”이라고 부연 설명해야 맞는 말이다.

이를 다시 詳論하면 君道의 明決이란 위에서 두루 살펴서 신체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사리에 밝아 명철하게 英明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化育하는 君主가 되고, 相道의 位育이란 神明한 명령을 받들어 모든 신체의 각부가 제자리에서 안정되게 化育할 수 있는 大業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이렇게 愚見을 천명하는 이유는 시중에 나와 있는 ≪黃帝內經≫의 모든 번역서들의 설명이 실제 내용과 거리가 멀고 미흡하여 특별히 이 부분을 다시 밝혀두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위에서 예를 든 것 외에도 ≪黃帝內經≫ 곳곳에서 刪削 修訂이 자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衍字라고 刪去하거나 글자를 수정하기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어절의 끝 글자를 다음 문절 冒頭에 옮겨서 풀이한 부분도 발견 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東洋醫學 최고의 典籍인 ≪黃帝內經≫을 후세인들이 난도질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후학으로서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愚老가 의학에 늦게 입문한 지각생으로서 체력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어 隔靴搔癢으로 이에 대한 애석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오로지 바라건대 언젠가 연부역강하고 賢達한 신진학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초학부터 용맹정진하여 이와 같은 학문적 적폐를 바로잡아 주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그러나 ≪黃帝內經≫의 원문이 실제로 문제점이 있는 부분도 없지 않다.
≪素問 第二十四•血氣形志篇≫에는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百藥”이라 하였고,
≪靈樞 第七十八•九鍼論≫에서는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甘藥”이라 하였다.

이는 몸과 마음이 고달프면 病이 목구멍에서 발생하는데, ≪血氣形志篇≫에서는 여러 가지 약(百藥)으로써 치료한다고 하였고 ≪九鍼論≫에서는 甘潤和緩한 甘藥으로써 치료한다고 하였으니, 양편을 비교하면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답은 오로지 오늘날 咽喉之病에 甘桔湯이 대표적 처방이라는 것을 고려하고 또 처방 구성약재들의 약성을 감안하면 당연히 ≪九鍼論≫의 서술이 정당하다고 본다. 그래서 여기서는 부득불 ≪血氣形志篇≫의 원문인 ‘百藥’을 ‘甘藥’으로 수정해야 된다고 사료된다. 그러나 ≪黃帝內經≫의 모든 번역본들은 원문 그대로만 번역하고 있으니 全書를 폭넓게 고증함이 부족하다고 본다.

무릇 글이란 문장에 따라서 또는 전체 글의 論題에 따라서 단 한 글자나 어휘일지라도 전혀 달리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는 兩篇의 53자로 된 4행의 글이 모두 동일하다. 참고로 ≪血氣形志篇≫과 ≪九鍼論≫의 내용을 아래에 각각 轉載하는데, 오로지 차이가 있다면 順次에 약간 차이가 있고 ‘百藥’과 ‘甘藥’이 다를 뿐이다.

≪血氣形志篇≫내용 :
形樂志苦 病生於脈 治之以灸刺。
形樂志樂 病生於肉 治之以鍼石。
形苦志樂 病生於筋 治之以熨引。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百藥。


≪九鍼論≫내용 :
形樂志苦 病生於脈 治之以灸刺。
形苦志樂 病生於筋 治之以熨引。
形樂志樂 病生於肉 治之以鍼石。
形苦志苦 病生於咽嗌 治之以甘藥。


다음으로 의약서적에서 오류를 몇 가지 예를 들면, 먼저 ≪申氏本草學≫ 113쪽의 麥門冬 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다.
“진실로 保肺의 津梁이요, 淸心의 指南이다. 麥門冬은 天門冬과 비슷하나 麥門冬은 甘味가 甚多하고 寒性이 差少하며, 天門冬은 所主가 心에 있고 麥門冬은 所主가 肺에 있고 心에도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天門冬의 所主는 肺腎에 있는데 아마 출판과정에 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本草綱目≫ 744쪽 天門冬 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 이것이 正論이다.
嘉謨曰︰天麥虋冬並入手太陰 祛煩解渴 止咳消痰。 而麥門冬兼行手少陰 清心降火 使肺不犯邪 故止咳立效。 天門冬行足少陰 滋腎助元 全其母氣 故消痰殊功。 蓋腎主津液 燥則凝而爲痰 得潤劑則化 所謂治痰之本也。이를 要略하면 “天麥虋冬並入手太陰。 麥門冬兼行手少陰 而天門冬兼行足少陰。”라고 정리하면 간명하다. 즉 麥門冬은 所主가 心肺에 있고, 天門冬은 所主가 肺腎에 있다고 보면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本草學에 通博한 申佶求 선생도 天門冬은 “所主가 心에 있다”는 등 二冬의 歸經을 분명하게 정리하지 못한 것은 千慮一失의 瑕疵라고 사료된다. 그런데 李尙仁 교수는 그가 저술한 ≪本草學≫(122쪽)에서 이런 오류를 그대로 轉寫하여 간행하였으니, 이 또한 瞽馬聞鈴이며 百犬吠聲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申佶求 선생은 ≪本草學≫ 總論에서 李時珍이 ≪本草綱目≫의 “원고를 93회 교정하였다”고 하는 오류를 범하였으나, 우리 大韓韓藥協會의 원로 학자인 楊福圭 박사는 ‘稿凡三易’이라는 王世貞의 ≪本草綱目≫ 서문에 의거하여 “원고를 3회 교정하였다”고 바로 잡음으로써 瞽馬聞鈴을 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先學들의 誤謬를 姑息的내지 盲目的으로 沿襲하지 않고 많은 典籍을 詳考하여 바로 잡는 용기가 있어야 학문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醫學史를 살펴보면 ≪韓國人名大事典≫과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에는 尤庵 宋時烈의 제자인 충청도 사람 李景華(1629~1706)가 正祖 14年(1790)에 출간된 ≪廣濟秘笈≫을 저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언급한 李景華가 161세에 ≪廣濟秘笈≫을 저술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맙소사 ≪廣濟秘笈≫을 저술한 장본인은 평안도 성천 사람인 李景華가 따로 있다. 이와 같이 공교롭게도 同名異人을 이용하여 남의 명의를 도용하였는데도 이를 후학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群盲撫象이나 百犬吠聲을 한 것이다.

또 하나 거론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전문서적인 ≪及幼方≫을 저술한 重卿 趙廷俊이 그의 自序에서 “年今望八 桑楡景迫 精力衰耗 隨得隨失.....”이라 기록했는데, ≪韓國醫學史≫를 저술한 金斗鍾이 ‘望八’을 80세로 해석함으로써 ≪東醫處方大全≫(北韓版), ≪한의학대사전≫(鼎談社), ≪韓國科學技術史資料大系≫(驪江出版社), ≪동의학대사전≫(北韓版) 등등 모든 사전들에서도 무사안일하게 아무런 고증도 하지 않고 “趙廷俊이 80세에 ≪及幼方≫을 저술하였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瞽馬聞鈴이 되고 말았다. 望八은 71세를 뜻하는 말인데 최초 언급한 사람이 엉뚱한 해석을 함으로써 群犬吠聲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우리 후학들에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이라는 선인들의 箴言을 되새기게 한다. 위 두 가지 출판물 오류는 愚老가 ≪大韓韓藥協會百年史≫를 편집하면서 이미 바로 잡은 바 있다.

다음으로 다른 한 가지를 예로 들면, 漢醫藥에 관한 지엽적인 문제이지만 원문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毫釐千里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黃度淵의 ≪方藥合編≫ 荊芥條에 “食黃桑魚 犯薑芥立死”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食黃桑魚 犯薑芥立死 惟地漿可解”라는 ≪本草綱目≫의 내용을 줄인 글이다. 이를 번역하면 “황상어라는 고기를 먹고 荊芥를 범하면 바로 죽게 되는데, 오직 地漿水만이 이를 해독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薑芥는 荊芥의 異名인데, 우리나라 ≪方藥合編≫ 최초의 번역판인 南山堂판본에서 薑芥를 생강과 개자라고 해석을 함으로써 “황상어를 먹고 생강과 개자를 범하면 바로 죽게 된다.”고 번역하였으니 이는 荊芥와는 아무 상관없는 말을 늘어놓음으로써 황당무계한 臆說을 후학들로 하여금 정론처럼 인식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 후 모든 ≪方藥合編≫의 번역판들이 이를 따르니 瞽馬聞鈴이 되고 말았다. 이와 같은 오역을 맹목적으로 따른 것은 이들이 하나같이 모두가 ≪本草綱目≫을 제대로 考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판에서도 이와 같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여기서 거론하기는 참람한 일이지만 愚老는 1983년 이전에 韓藥業士 시험에 대비하여 ≪本草綱目≫을 詳考하여 이러한 출판계의 모순점을 찾아낼 수가 있었다. 오로지 학자라면 번역문을 대할 때 주제의 본질에 벗어난 말로써 牽强附會하며 억지로 꾸민 말들은 누구든지 눈여겨보면서 原籍들을 詳考한다면 어렵지 않게 百犬吠聲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時論

오늘날 우리나라 시국을 살펴보면, 핼러원(Halloween) 축제로 인해 이태원에서 대형 압사사고가 발생하여 156명이나 되는 꽃다운 어린 생명들을 잃게 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었다. 원래 핼러원 데이는 귀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됐다. 기원전 500년경 영국과 아일랜드, 프랑스 북서부 지방에 살던 켈트족은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귀신 복장을 하고 집안을 차갑게 만들었다. 그래서 10월 31일은 저승의 문이 열려 죽은 자의 영혼과 악마들이 이승을 올라와 자신이 머무를 다른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날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핼러원은 고대 브리튼과 아일랜드에 거주했던 켈트족의 문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래서 켈트족은 이 축제 때 동물의 머리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어 분장을 했고, 동물이나 곡식, 사람을 제물로 바쳐 불에 태웠다고 한다. 이것은 멀리 보면 상고시대 하나의 설화이지만, 가깝게 보면 한갓 미신적인 풍속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설화적이거나 미신적인 풍습은 각기 상이하긴 하지만 지구상에 있는 어느 민족이나 자연숭배와 샤머니즘에 근거한 유사한 풍습을 숭상하고 있다는 것만은 공통적이다.

이 풍습은 아일랜드에서 유래되어 미국으로 건너갔다. 11월 1일쯤 추운 겨울이 시작되는 때에 맞추어 마치 우리나라 동지처럼 태양이 약해지는 겨울에 죽은 혼령이 나타나 농사를 망치고 사고를 일으키는 것을 막기 위해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미국이나 멕시코 등 서양의 청년들은 몇 명의 친구들끼리 모여서 이날을 함께 기념하고 조용하게 보낸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우리나라에 전래되면서 우리의 청소년들은 우리의 전통문화와 풍속은 도외시하면서 미국 풍속이면 무엇이든 따라하고 싶어 하고 서양문물이면 무엇이든지 흉내 내고 싶어 하는 판국인데, 게다가 상업적인 부추김에 편승하여 광분한 군중심리로 인해 과열된 상황에서 급기야 대형 참사를 낳고야 말았으니, 이는 근본적인 뜻도 모르고 의미도 모르면서 또한 자기의 올바른 주견 없이 맹목적으로 남의 흉내를 내다가 처참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오로지 우리는 溫故知新하는 명철함이 있어야 할진대 무턱대고 맹목적으로 醜婦效顰(추부효빈)을 하다가는 그 대가가 너무 혹심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고, 우리는 이번에 우리가 겪은 혹독한 경험을 절치부심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않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사회에서도 어떤 집단의 대표자가 千不當萬不當한 일을 두고 巧言令色이나 甘言利說을 동원해서 指鹿爲馬로 우겨대면, 추종자들은 附和雷同으로 이를 붙좇아서 그것을 하나의 금과옥조처럼 주장하는 무리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언필칭 애국이라고 말은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그들 집단만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목적을 두고 정당한 사회 국면을 뒤엎어서 사익 도모를 획책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北轅適楚(북원적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더욱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자기네 편 사람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이 너무 많다. 오로지 바른 사회가 되려면 어느 편이 정의이고 어느 편이 불의인지를 헤아려서 행동해야 할진대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심각한 사회적 病弊이다. 어느 세월엔가 국민 모두가 大悟覺醒함으로써 이러한 사익추구와 편 가르기 현상이 종식되고, 오로지 국가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너와 내가 따로 없이 민족 모두가 흔쾌히 화합하여 大同團結함으로써 鳶飛魚躍의 평화로운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壬寅年(2022) 炎暑之節 杏林埜人 權三壽 謹識
張介賓의 字와 號에 대한 小考
≪景岳全書≫와 ≪類經≫을 저술한 張介賓의 字는 會卿이고 號는 景岳이며 自號는 通一子이다. 다시 敷衍하여 설명하면 張介賓은 字를 會稽 출신이라서 會卿이라하였고, 號는 仲景을 尊師重傅로 推仰한다 하여 景岳이라 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다만 愚瞽가 이런 내용을 다시 한번 擧論하는 이유는 穩當하지 않은 내용이 후세에 訛傳되는 것을 마음에 용납할 수 없고, 우유부단하게 좌시하거나 袖手傍觀하지 않으려는 衷情에서 기록으로 남겨서 후세에 바르게 전하려는 정심의 發露일 뿐이다.

이를 입증할 자료를 醫籍들을 근거로 考證해 보면,
1. 1700년 ≪景岳全書≫ 초판 魯本의 序文 다음에 그의 외손자인 林日蔚의 全書紀略에 字가 會卿이라고 밝힌 것이 張介賓의 字를 세상에 알린 始原이라 할 수 있다.
2. 다음으로 全書紀略을 轉載한 藜本(1768)에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3. 全書紀略을 轉載한 四庫全書(1778)에서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4. 全書紀略을 轉載한 王本(1914)에서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5. 全書紀略을 轉載한 江本(1917)에서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6. 그리고 全書紀略을 轉載한 宋本(1991)에서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7. 全書紀略을 轉載한 臺灣 國風出版社(1981) 版에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그러나 별기한 作者 簡介에는 惠卿으로 되어있다.
8. 全書紀略을 林跋이라고 기록한 人民卫生社版(2007)에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다음으로 醫學 관련 辭典들을 살펴보면,
1. 일본인 丹波元胤이 撰한 ≪醫籍考≫에서도 會卿으로 되어있다.
2. ≪中囯医籍大辞典≫에서도 ≪類經≫條와 ≪景岳全書≫條에서 會卿으로 되어있다.
3. 謝觀의 ≪中醫大辭典≫의 張介賓 條에는 惠卿으로 되어있고,
4. 그리고 謝觀의 ≪中囯医学大辞典≫에도 張介賓 條에는 惠卿으로 되어있다.
5. ≪中文辭典≫ 등 기타 중국의 인명사전에는 惠卿으로 되어있고,
6. 李雲의 ≪中医人名大辭典≫에는 會卿(一作 惠卿)으로 되어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景岳全書≫의 모든 판본들이 張景岳의 紀要에 대하여 한결같이 初刊本인 魯本으로부터 全書紀略을 轉載하면서 字가 會卿이라고 하였는데, 다만 辭典 종류에서 惠卿이라고 기록된 것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을 근거로 是非를 가릴 것인가는 오로지 그 내용이 최초로 기록된 문헌을 으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自明한 일이다. 그래서 醫學書籍인 ≪景岳全書≫가 있고 난 다음에 인명사전이 나왔으니, 즉 인명사전에서는 ≪景岳全書≫ 全書紀略으로부터 발췌하였고 이때 音이 비슷하여 轉寫誤謬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 어느 학자가 아무리 정확하고 신뢰성이 있다 해도, 그의 외손자가 정성으로 기록한 외할아버지 傳記보다는 우선할 수 없다. 따라서 張介賓의 字는 全書紀略의 기록인 ‘會卿’이 백번 정당하다고 본다. 다만 國風版과 ≪中医人名大辭典≫에서 會卿과 惠卿을 다 기록한 것은 瞽馬聞鈴을 했거나 확실한 고증도 없이 막연하게 양다리 걸치기 한 내용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景岳全書≫ 5권에 通一子脈義라는 篇名이 나오는데, 이 부분에서 世學들은 通一子를 別號라 했지면 自號라고 보아야 타당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景岳 자신이 쓴 글의 篇名이니 自號라고 해야 合當하기 때문이다.
2021年 辛丑 歲暮 杏林埜人
惟相火正氣也 只龍火元氣之賊耳
원래 腎의 통제하에 命門이 있고 命門의 率下에 眞陰과 眞陽이 있는데, 眞陰과 眞陽은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로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데, 眞陰은 水를 주관하고 眞陽은 火를 주관한다. 그러므로 眞陰은 元精・腎陰・眞氣・腎水・眞水・元陰이라고도 하며, 眞陽은 先天之火・命門火・相火・眞火・元陽・腎陽이라고도 하는데, 眞陰과 相火는 陰陽의 관계로서 생명유지에 절대적인 물질과 기능으로서 상호 긴밀히 작용하는 生命의 橐籥(탁약)이자 生化의 根源이다.

命門이란 곧 生命의 門이란 뜻이다. 특히 眞陽은 元陽 腎陽으로서 火를 운용하기 때문에 그의 機轉을 상징하여 命門火라고 지칭한다. 달리 相火라고도 하는데 이는 人身에서 心火가 君王之火라는 뜻에서 君火라고 부르는데 비하여 命門火는 亞火로서 相臣之火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어, 다시 이를 줄여서 相火라고 부르는 것이다.相火는 위로는 脾胃를 溫養하여 水穀을 傳化하며 津液을 施化하고, 아래로는 腎水를 따뜻하게 하고 陰陽이 흡합(翕合)함으로써 변화하여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지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病理的 문제로는 相火는 動的인 것을 주관하므로 相火가 지나치게 熾盛하면 淫慾을 충동하여 龍雷之火가 되어 陰精을 손상시키고 腎精을 涸竭시킨다.

李東垣은 ≪脾胃論≫ 中卷에서 飮食勞倦所傷始爲熱中論에서 “相火下焦包絡之火 元氣之賊也。 火與元氣不兩立。”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당시 張子和 劉河間 朱丹溪 등의 抑陽助陰하는 醫學的 思潮에 風靡되어 그가 創方한 補中益氣湯・益胃升陽湯・淸暑益氣湯・半夏白朮天麻湯・升陽益胃湯 등에서의 益氣에 더불어 溫補脾胃하는 立方 主旨에 背馳되어 矛盾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漢醫學의 巨星같은 東垣이 도대체 왜 이런 글을 남겼는지 오늘날 庸醫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나, 미상불 이는 東垣이 학자로서 자기의 학문에 대해 정체성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을 일게 하는 부분이다. 이는 아무래도 당시 金元四大家들이 온통 瀉火가 아니면 滋陰이라고하는 抑陽助陰하는 의학적 경향에 묵시적으로 承襲하는 태도였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으니, 그러므로 明代의 저명한 의학가인 李東垣의 이러한 의학적 행보는 識者들로부터 瞽馬聞鈴이나 百犬吠聲이라는 책망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후학들은 明見達識한 의학적 理論을 소유하여 聰識絶倫한 대학자 李東垣이 자기의 뚜렷한 소신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였음을 千慮一失이었다고 매우 애석하게 여기게 되었다.

≪黃帝內經・天元紀大論≫에서는 “君火以明 相火以位”라고 하였는데, “君火以明決 相火以位育”이라고 부연 설명해야 맞는 말이다. 이를 다시 詳論하면 君道의 明決이란 위에서 두루 살펴서 신체 내외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하여 사리에 밝아 명철하게 英明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化育하는 君主가 되고, 相道의 位育이란 아래에 位置하면서 君道의 神明한 명령을 받들어 모든 신체의 각부가 제자리에서 안정되게 化育할 수 있는 大業을 이루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함에도 위에서 東垣이 언급한 “相火는 下焦包絡之火로서 元氣之賊”이라는 말은 萬古不變의 東洋醫學 原典인 ≪內經 天元紀大論≫의 뜻과도 背馳되는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要略하여 整理하면 東垣이 “相火는 元氣之賊”이라고 한 말은 자신이 創製한 名方들의 立方 趣旨에도 어긋날 뿐만아니라 ≪黃帝內經≫의 醫學原理에도 크게 背馳되는 것이다. 따라서 愚按에는 단연코 “惟相火正氣也 只龍火元氣之賊耳。”라고 해야 醫學的 理論으로 穩當한 말이라고 본다.

그런데 相火가 爲物所感으로 淫慾이 발동하여 지나치게 항진하는 경우 “하늘에서 천둥번개의 우레가 치는 가운데 龍이 승천하듯이 그 氣勢가 빠르면서도 맹렬하므로 당시 醫家들은 肝腎 등에 저장된 相火를 龍火 즉 龍雷之火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相火는 正氣이고 龍火는 邪氣로서 病氣이다. 즉 相火는 正氣로서 元氣이고 眞氣이며 生氣로서 생명의 橐籥이고 化生의 源泉이다. 그런데 당시의 의학적 정황을 고려해 보면 李東垣도 補陰瀉火하는 醫學的 思潮에 風靡되어 相火를 오히려 龍火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元氣之賊이라고 말한 것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李東垣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8백년이 지난 작금에 비천한 후배로서 참람하게도 감히 妄衒己長하는 것처럼 단지 一曲을 반론하였음을 매우 참송하게 여기며 삼가 고개 숙여 정중하게 사과드린다.
2021년 辛丑 孟冬 杏林埜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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